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시 각국의 부가가치세(VAT)를 들여다보겠다고 선언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부가세는 각국의 조세 주권과 직결되는 것으로 트럼프의 발언은 내정 간섭으로도 간주될 수 있다는 점에서 거센 논란을 불러올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부가세가 불공정한 무역장벽으로 작용해왔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생각”이라고 짚었다. 현재 유럽연합(EU)의 부가세는 평균 22%이며 한국과 일본은 10%, 중국은 13%(제조업 기준)로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175개국 대부분이 부가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25년 기준 부가세 또는 판매세를 부과하지 않는 국가는 버뮤다, 버진 아일랜드, 케이맨제도, 브루나이, 쿠웨이트 등 9개국이다. 미국은 연방 차원의 부가세는 없고 50개 주 중 45개 주가 평균 6.6%의 판매세를 부과한다.
부가세를 운영하는 나라들은 통상 자국 기업이 수출할 때 제조 과정에서 붙는 부가세를 환급해준다. 예를 들어 EU 소재 기업이 유럽 역내에 제품을 팔면 22%의 부가세를 내야 하지만 수출을 할 때는 이를 환급 받는 만큼 수출 시장에 집중할 동기로 작용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자국 기업이 수출하면 판매세를 매기지 않지만 판매세율이 해외 부가세율에 비해 크게 낮아 혜택 자체가 적다는 평가다. 해외 주요국의 부가세율과 미국의 판매세율 차이가 미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을 갉아먹어 무역적자를 늘리고 있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다.
미국 정부의 외국 부가세에 대한 불만은 하루이틀 된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정책을 설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저서 ‘자유무역이라는 환상’을 보면 미국은 이 같은 불공정을 해결하기 위해 1970년대 초 세법에 ‘국내국제판매법인(DISC)’이라는 개념을 넣었다. 미국 수출 업체가 자회사를 설립할 수 있게 해 수출액의 일정 비율만큼 면세 혜택을 주는 제도다. 수출 시 부가세를 면제 받는 각국 기업에 대항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유럽은 1973년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세계무역기구의 전신)에 분쟁을 제기했고 1981년 GATT가 수출 보조금이라고 판단하면서 미국은 패소했다.
1984년 미국은 해외판매법인(FSC) 제도를 신설해 해외 조세 피난처에 계열사 등을 설립하고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에 소득세를 감면해 줬지만 이 역시 유럽이 1998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면서 미국은 다시 패소했다. 이후로도 공화당과 미국 수출기업은 외국의 부가세 환급제도 탓에 미국 기업이 외국 기업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쟁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인 2017년 ‘국경조정세’를 추진하기도 했다. 국외 원천소득에 대해서는 비과세 혜택을 주고 국내에서 얻은 이윤에 대해서 부가세 성격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월마트 등 수입 제품을 유통하는 업체들이 크게 반발하고 나서면서 이 역시 좌초됐다.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외국 부가세에 대한 투쟁이 1973년 유럽이 GATT에 분쟁 제기를 한 후 50년 이상 이어졌다며 WTO, 미국 내 이해관계자 등에 막히자 상호 관세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위원(전 통상교섭본부장)은 “부가세는 조세 주권에 해당하는 영역이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를 매기는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는 구상에 대해 해외 교역국에서는 당연히 엄청난 반발이 뒤따를 것”이라며 “한국 정부는 개별 대응하기보다는 EU·일본 등 이해관계가 비슷한 국가들과 공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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