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러스하면서도 기묘한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깊이 있는 통찰력으로 풍자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봉준호 감독. 블랙 코미디로 시작해 절망과 부조리를 극대화하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세련된 풍자는 봉 감독이 가장 잘 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다.
지난 17일 언론 배급 시사회를 통해 국내에서도 베일은 벗은 ‘미키 17’은 봉 감독이 가장 잘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완성한 가장 독창적인 SF 블록버스터이자 봉 감독의 세계관이 집약돼 스스로 경신한 ‘인생작’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이 때문에 ‘빙하기’ 수준으로 얼어 붙은 영화 시장에서 올해 첫 ‘천만 영화’라는 타이틀을 거머쥘지를 비롯해 한국뿐만아니라 세계 동시 개봉하는 ‘미키 17'이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거둘 흥행 성적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우선 최근 영국 런던 시사회와 베를린 영화제에서 공개된 이후 현지 언론들은 "세상 어떤 블록버스터와도 닮지 않은 신기한 스펙터클” “봉준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증거” 등 호평이 이어졌지만 일부에서는 다소 박한 평가를 내놓기도 했다. 개봉이 1년 가량 미뤄진 데다 ‘기생충’ 이후 6년 만에 봉 감독이 선보이는 신작이기에 ‘미키 17’이 조금씩 공개되고 평가가 나올 때마다 국내의 관심이 집중됐다.
국내에서도 베일을 벗은 ‘미키 17’은 ‘봉준호가 SF 블록버스터도 잘 할까?’라는 우려를 불식하며 ‘봉준호만의 리얼리즘 SF 블록버스터 장르'라는 만들어 냈다. 스펙터클로 관객을 유인하고 던지는 심오한 메시지는 액세서리에 불과한 기존 할리우드의 SF 블록버스터가 아니었다. 애매하게 자본주의를 비판한 게 아닌 ‘금융 자본주의’를 정조준하고, 인간의 실존에 대한 질문은 해본 적도 없을 정도로 인간의 존엄이 사라진 시대를 살아가는 선량한 소시민이 빚을 갚기 위해 죽고 태어나기를 반복하는 과정은 판타지나 SF가 아닌 리얼리즘에 가깝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비정함을 SF라는 장르를 통해 날카롭게 비판한 것이다.
영화 ‘미키 17’의 배경은 그리 멀지 않는 미래인 2054년이다. 친구 티모(스티븐 연 분)과 마카롱 가게를 열었다가 빚더미에 오른 미키(로버트 패틴슨 분)이 국회의원 마셜(마크 러팔로)이 추진하는 얼음 행성 ‘니플하임’ 개척단에 지원하면서 시작된다. 미키는 신체정보와 기억을 스캔해둔 후 죽으면 프린터에서 새롭게 태어나 새로운 업무를 수행한다. 아파도, 숨 막혀도, 추워도. 더러워도, 고통스러워도 폐기될 때까지 일을 하고 실험 대상이 된다. 수 없이 프린팅되고 폐기되기를 반복하다 열일곱 번째 미키가 죽었다고 착각해 프린팅된 열여덟 번째 미키가 태어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확장된다.
미키 17과 미키 18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그 다음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같은 미키’이지만 언제든 적대 관계에 놓일 수 있을 것 같아 긴장을 놓을 수 가 없다. 여기에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트럼프를 연상하게 한다는 반응이 나온 정치인 마셜의 상상을 초월한 비인간적인 면모가 전면에 드러나면서 분노를 끌어 올린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선량한 소시민, 노동자들로 상징되는 미키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보여줘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인간이면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역설한다. 이를테면 얼음 행성 ‘니플하임’의 생명체인 아기 크리퍼 ‘루코’가 마셜에 의해 죽게 되자 크리퍼의 리더인 ‘크리퍼 마마’가 분노하는데 ‘크리퍼 마마’와 협상을 통해 파괴를 막는 것은 미키 17과 미키 18이다. 미키 17과 미키 18은 생명의 소중함과 사랑을 아는 ‘진짜 인간’으로 목숨을 걸고 ‘크리퍼 마마’가 구해오라고 한 크리퍼 ‘조코’를 결국 ‘크리퍼 마마’ 곁으로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다. 또 ‘크리퍼 조코 구하기’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미키와 여자친구 나샤(나오미 아키에 분)와 나눈 ‘사랑의 암호' 덕이었다.
익스펜더블로 태어나고 살고 폐기되기를 반복하는 지옥같은 ‘니플하임’에서도 미키가 살아 남을 수 있던 이유는 그러니까 ‘사랑’이었다는 메시지가 전달될 지점에서는 블랙 코미디가 따뜻한 휴먼스토리이자 멜로 장르가 돼 감동을 선사한다. 감동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휴먼 프린팅과 같은 비인간적인 프로젝트가 폐기되는 등 인간성 회복을 시작하는 단계이자 영화의 엔딩에서 미키는 이렇게 말한다. “이제 나도 행복해져도 괜찮잖아”. 행복이라는 가장 추상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압도적인 스펙터클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1억5000만 달러가 투입됐다고 알려졌는데 얼음 행성, 설경, 휴먼 프린팅 등 장면은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SF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특히 ‘괴물’과 ‘옥자’를 섞은 듯도 하고 말랑말랑한 마쉬멜로우 같기도 한 ‘크리퍼’는 볼 수록 귀엽고 중독성 있는 비주얼이라는 평가다.
‘미키 17’은 봉 감독의 신작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2013년) 등에 이어 한국 감독이 할리우드 자본으로 만들어 글로벌 개봉을 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도 관심이 높다. 국내외 언론의 호평에 국내 관객수가 아닌 글로벌 박스 오피스에서 ‘미키 17’이 얼마나 흥행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8일 전 세계 최초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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