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성경이나 이슬람교의 코란은 시대와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문자로 기록된 정보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늘 불변일 수는 없을 것이다. 신탁(神託)의 문헌도 그런데 하물며 인간 사고의 집약체인 법조 문구에 대한 해석은 말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해석에 대한 반성적 고려는 끊임없이 수행할 작업일 수도 있다. 대법원의 판례 변경도 그런 각도에서 이해할 수는 있다. 법령에 대한 해석이 불변이어서 과거의 잘못된 해석을 수정할 수 없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해 12월 통상임금에 대한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판결은 11년 전 판결의 법리적 문제점을 바로잡는 취지였다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 2013년 12월 대법원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며 임금 지급의 ‘고정성’을 핵심 요건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판결문 곳곳에서 근로의 대가성과 고정성을 혼돈하는 부족함을 보였고 많은 모호한 문제를 남겼다. 당시에도 많은 지적이 있었지만 판결을 어쩔 수 없었고, 법률보다 더 광범위하고 강한 판례의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 판결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통상임금을 둘러싸고 오히려 분쟁과 논란이 더 확산됐다. 혼란의 와중에도 기업과 근로자들은 그에 맞춰 임금체계를 바꾸고 적응하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해 12월 대법원이 통상임금에서 고정성을 제외하는 새로운 판결을 내리면서 정기 상여금과 명절 상여금, 휴가비 등도 통상임금에 포함됐다. 임금에 관한 법률 규정이 미비한 상황에서 판례가 사실상 법으로 기능했는데 10년이 넘는 적응의 시간이 무색하게 대법원이 판례를 갑자기 전혀 다른 방향으로 변경한 것이다. 법리의 당부와는 별개로 현실에 미칠 충격을 배려하지 못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의 임금 근로자가 2204만 3000명에 이르는 것을 고려하면 임금제도와 관련된 판결은 정말 신중해야 한다. 대법원은 파장을 줄이기 위해 판례 변경의 소급효를 제한한다고 적었지만 그것도 미봉책이다. 사법부는 조금 더 지혜로울 수 없었나.
이 판결은 장차 임금 개념 전반에 중대한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충분하다. 최근까지 논란이 되는 경영 성과급의 평균임금 해당성에 관한 논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평균임금과 통상임금 개념의 재편을 가져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변화가 법 개정이 아니라 판례 변경을 통해 일어난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임금 개념이 원만히 재정립되고 노사 간의 혼란이 줄어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문제가 최근의 심각한 경제위기에서 모두를 주저앉혀서는 안 된다. 판결은 내려졌고 그래서 어쩔 수 없다면 정부와 국회가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국회는 신속히 임금 법·제도 정비에 착수해야 한다. 판례가 변경된다고 모든 것이 뚝딱 곧바로 바뀔 수는 없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체계 개선을 논의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과 배려도 필요하다.
고용노동부가 신속하게 통상임금 지침을 개정해 발표한 것은 매우 시의적절했다. 현장 교육과 지도까지 원활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기업도 임기응변으로 대응하지 말고 이 기회에 합리적인 임금체계를 제대로 구축하기 위해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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