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겨울 동장군의 기세가 좀처럼 멈출 줄 모르면서 입춘, 우수 등 봄을 알리는 절기가 지나간 2월 중·하순에도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안팎에 머무는 날이 많다. 1~2일 가량 추운 날씨가 조금 풀리는 것 같다가도 금세 기온이 급강하하는 흐름이 겨우내 이어지면서 체온 유지가 어려워 저체온증·동상 등 한랭질환에 걸리기 쉽다. 한랭질환은 추위에 장시간 노출됐을 때 발생하는 신체 손상이나 이상상태다. 이들 질병은 초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을 때 치명적 결과가 나타날 수 있어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특히 추운 날씨에 과음은 일시적으로 체내 알코올이 분해되면서 체온을 끌어올릴 수 있지만 더 나쁜 영향을 미친다.
19일 질병관리청이 전국 514개 응급의료기관을 대상으로 가동 중인 한랭질환 응급실감시체계를 보면 지난해 12월부터 이달 16일까지 전국에서 신고된 한랭질환자는 모두 304명이며 이로 인해 7명이 숨졌다. 응급실감시체계를 운영한 이래 첫 해인 2013년을 제외하면 매년 환자가 300명을 웃돌고 있다. 연령대별로는 60대 이상 환자 비중이 전체의 63.8%로 3분의 2 가까이 차지한다. 체온 유지 능력이 약한 고령층으로 갈수록 발생률이 높은 것이다. 노약자, 심뇌혈관환자는 추운 날씨 혈관을 수축해 열 손실을 줄이는 기전이 일반 성인에 비해 낮기 때문에 추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따뜻한 곳에서 조금 쉬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하다 낭패를 볼 수 있다.
대표적 한랭질환은 체온이 35도 아래로 떨어지는 저체온증이다. 이번 겨울 신고된 한랭질환자들 중 80.6%에 달했다. 임지용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체온이 약간만 낮아져도 우리 몸은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열을 발생시키거나 추위를 피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하지만 추위에 오랫동안 노출된 불가피한 상황에서는 우리 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체온이 35도 미만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떨림, 언어 장애, 의식 혼미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특히 체온이 33도로 내려가면 근육 강직 현상이 나타나고 32도 이하로 내려가면 의식 저하, 호흡·맥박·혈압 감소, 심장 부정맥이 발생하며 심할 경우 심장마비나 쇼크로 사망할 수 있다.
동상 역시 추운 날씨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한랭질환이다. 추운 환경에 의해 피부와 그 아래의 조직이 손상되는 질환이다. 주로 심장과 멀고 외부에 노출된 신체부위인 뺨, 코, 귀, 손·발가락 등에서 나타난다. 발병하면 피부 감각이 떨어지고 통증, 부종, 가려움 등이 나타나며 피부색은 창백해지면서 점차 누런 회색으로 변한다. 이 상태에서 계속 차가운 환경에 노출되면 피부나 말단 조직이 검은색으로 변하면서 괴사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절단까지 가야 한다. 동상은 영상 기온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정재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초속 30m의 바람이 부는 영하 7도가 바람 없는 영하 40도보다 더 심한 동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랭질환을 예방하려면 적절한 체온 유지가 필수적이다. 체감온도 등 날씨 정보를 확인한 후 추운 날씨에는 가급적 야외활동을 줄여야 한다. 외출할 때는 내복 등 여러 겹의 옷을 입고 장갑, 목도리, 마스크 등 방한용품을 착용하면서 손·발·귀 등 말초 부위를 따뜻하게 보호해야 한다. 만약 옷, 양말, 신발 등이 젖었다면 가능한 빨리 건조한 것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심뇌혈관질환, 호흡기질환이 있으면 한랭질환 예방에 더 신경써야 한다. 심뇌혈관질환자는 추운 날씨 탓에 교감신경이 활성화돼 혈관이 수축되고 혈압 상승, 혈액의 점성도 증가, 소변 양 증가로 탈수 유발 등 상태가 악화할 수 있다. 호흡기질환자는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로 인해 기관지 수축이 발생하면서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추운 날에는 음주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회식이나 모임 등에 참석해도 과음을 피하는 게 좋다. 실제로 매년 신고되는 한랭질환자 중 20~30%가량이 음주 상태에서 발견된 것으로 나타난다. 술을 마시면 피부 혈관이 확장되면서 신체에 열이 났다가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음주 상태에서는 추위를 인지하기 못해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과음한 뒤 야외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는 경우 한랭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흡연 또한 혈관 수축을 일으키고 혈액순환을 방해하기 때문에 좋지 않다.
박종학 고대안산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저체온증이나 동상이 의심되면 즉시 환자를 따뜻한 환경으로 이동시키고 담요나 의류로 감싸 체온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동상이 의심되는 부위는 뜨거운 물 대신 38~42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담가야 한다”며 “의식이 없는 경우 즉시 119에 신고하고 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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