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둘러싼 한국의 이념 갈등을 집중 조명했다.
BBC는 20일(현지시간) "우리는 김정은과 손잡게 될 것 - 음모론이 한국을 사로잡았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반공 열풍'이 젊은층까지 확산되는 현상에 주목했다.
BBC는 "6·25 전쟁을 뼈저리게 기억하고 있는 한국의 노년층은 북한을 두려워하고 경멸한다"면서 "윤 대통령의 쿠데타가 실패한 지 2개월여가 지난 지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반공 열풍'이 윤 대통령의 지지자들을 사로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BBC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22세 여성의 발언에 주목했다. 약학을 전공하는 이 학생은 "윤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우리나라는 북한 김정은과 하나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이를 "윤 대통령의 가장 광적인 지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남한 공산화' 이론"이라고 설명했다.
집회 현장의 다른 참가자들도 유사한 인식을 보였다. 직장에서 뛰쳐나와 헌법재판소 앞 시위에 참가했다는 40대 직장인은 "이것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간의 전쟁"이라고 외쳤다. 한 30대 남성은 "윤 대통령을 빨리 직무에 복귀시켜야 한다"면서 "대통령이 북한 간첩들을 체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1960~70년대부터 이어진 '반공' 정서를 꼽았다. 남파 간첩 사건과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덧씌워진 '종북' 프레임이 중장년층에 깊이 뿌리내렸다는 분석이다. 특히 북한의 체제 위협이 사실상 사라졌음에도 윤 대통령이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 "종북 세력이 국회를 장악했다" 등의 주장으로 국민들의 두려움을 자극했다고 BBC는 지적했다.
실제로 탄핵 반대 집회 참가자들의 인식 변화는 주목할 만하다. 57세 남성은 "처음엔 윤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비상계엄이 눈을 뜨게 했다"고 BBC에 밝혔다. 한 40대 여성은 "이전에는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주장에 의구심이 있었지만, 계엄령 이후 사실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BBC는 특히 2030세대의 '중국 위협론'에 주목했다. "북한으로부터 실질적인 위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이들에게 중국은 더 믿을 만한 위협"이라는 것이다. 취업난과 주거난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가 급성장하는 중국에 느끼는 박탈감이 '반중' 정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공산주의가 두려움과 증오를 불러들이는 편리한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면서 "특히 극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증폭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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