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불안이 길어지는 가운데 경제·안보 복합 위기가 증폭되고 있는데도 국정을 책임져야 할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존재감 없이 계엄·탄핵의 늪에 갇혀 있다. 당장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자동차·반도체 등에 대해 관세 폭탄을 꺼낼 예정이다. 이에 국민의힘은 이달 21일에야 “지금부터라도 관세 전쟁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장기화에 고용 쇼크까지 현실화되고 있지만 여당의 뚜렷한 해법은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되레 탄핵·계엄 정국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17일 12·3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 “분명히 잘못됐다”면서도 “제가 국회 현장에 있었더라도 (계엄 해제) 표결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애매한 태도를 보이니 ‘계엄 비호당’이란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말 바꾸기와 진정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연일 ‘중도보수’ ‘성장 우선’ ‘경제 중심 정당’ 등의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여당이 복합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과 대비된다. 20일 열린 국정협의회 4자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은 주 52시간 근무제 완화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과 추가경정예산안, 연금 개혁 등의 쟁점에서 민주당의 입장을 반박했을 뿐 야당을 설득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러니 한국갤럽의 18∼20일 여론조사에서 중도층의 여당 지지율이 일주일 전에 비해 10%포인트 떨어진 22%에 그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데다 유력 대선 후보가 부각되지 않아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정책을 개발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정강정책 등에 규정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을 구체화해 실천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리다. 특히 보수가 지향하는 ‘민간 주도 성장’ 정책을 명확히 하면서 경제·민생 살리기 비전과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경기 침체와 저성장 위기 극복 및 지속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을 위한 해법을 제시해야 중도층으로 외연을 확장하고 재집권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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