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의 전통정원 조성 방식은 확실히 다르다. 중국이 장대한 스케일로 태호석 같은 자연을 주거지로 그대로 옮겨왔다면 일본은 아기자기한 자연 모습을 자신이 사는 건물에 모방 재현했다. 반면 한국은 거꾸로 자연 속에 건물을 가져가 지었다. 물론 이것은 ‘자연’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자연을 자연(自然) 그대로 두고 이를 연구하고 감상하는 방식을 채택해 왔던 것이다.
국가유산청이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사장 안호상)과 24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관에서 이러한 한국 전통정원을 디지털로 만날 수 있는 ‘미음완보(微吟緩步), 전통정원을 거닐다’ 전시를 공동으로 선보였다. 전시는 무료로, 4월 27일까지 진행된다.
미음완보는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다’라는 뜻으로 조선 초기 문인인 정극인(1401~1481)의 ‘상춘곡(賞春曲)’에 나오는 글귀다. 단순히 정원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교감하고 내면을 바라보는 심미적 과정을 담고 있다고 한다.
국가유산청은 “지난 2021년부터 전통 조경을 정밀 실측·조사하며 축적해 온 데이터를 활용해 옛 사람들이 꾸민 정원과 자연경관을 디지털 기술로 생생하게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산수지락(山水之樂), 자연을 벗 삼아 누리는 즐거움’에서는, 관람객들이 계단식 툇마루에 앉아 ‘차경’ 기법으로 구현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명승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 일원’에서 착안한 6m 높이의 폭포가 머리 위에서 갈라지는 양방향(인터랙티브) 콘텐츠를 통해 도심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2부 ‘격물치지(格物致知), 정원에서 얻는 아취’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자연의 정취를 누리고 심신을 수양하는 선조들의 방식을 사물에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매핑 콘텐츠로 구현했다. 전통정원의 대표적 공간구성 요소인 방지원도(方池圓島)의 구조와 의미를 재해석했으며, 국가민속문화유산 ‘논산 명재고택’의 석가산(石假山)을 본뜬 3차원 모형을 통해 정원 안에서 명승을 간접 향유하는 선조들의 방식을 계승했다.
3부 ‘인지제의(因地制宜), 자연에 의탁한 정원’에서는, 도심 속 전통정원인 창덕궁 후원의 사계와 함께 명승으로 지정된 네 곳의 별서정원 ‘보길도 윤선도 원림’, ‘담양 소쇄원’, ‘담양 명옥헌 원림’, ‘화순 임대정 원림’을 직접 거닐어 보는듯한 체험을 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우리 전통정원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알려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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