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무에 대한 이해까지 갖춘 ‘일하는 박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희 팀만 해도 최근 여러 명이 이직을 해서 어떻게 할지 막막하네요.”
취재 중 만난 한 삼성전자(005930) 반도체연구소 직원의 말이다. 반도체 연구 인력을 주 52시간 근무에서 예외로 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취재하면서도 복잡한 연구개발 과정을 세밀히 다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연구 현장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수록 중요해지는 대목은 삼성전자가 일할 맛 나는 조직 문화와 보상 체계를 갖추는 것이다. 이는 주 52시간제 예외 이상으로 시급한 과제다.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에서 1위로 도약하던 치열한 경쟁의 시간에 직원들은 새벽 3시에 티타임을 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시대와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주된 추동력은 성취감과 인정 그리고 보상이었다. 회사가 자신들을 믿어주고 그러면서 쏟은 땀이 결실을 거두던 시절이었다.
요즘 삼성전자의 젊은 직원들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갈망하고 있다. 일하러 온 회사에서 일하게 해달라는 요구는 역설적이지만 업무보다 보고를 위한 잡무가 우선되고 연구 성과보다는 인간관계에 능한 이들이 승진에 유리한 경험칙 때문일 것이다. 조직이 비대해져 불가피한 측면도 있겠지만 엔비디아가 조직이 커져도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기술 개발 이상으로 인력 관리를 중시해 성공한 것에 비하면 대조적이다.
“반도체는 결국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삼성전자의 부활을 기대하는 것은 결국 삼성의 인재 제일주의를 믿어서다. 삼성전자의 진짜 시련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진전이 더뎌서가 아니라 회사를 등지는 인재에 있다. 딥시크 사례에서 보듯 AI 기술 트렌드는 하루아침에도 변할 수 있다. 사람만 있다면 삼성전자도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반등의 모멘텀을 다시 마련할 것이다.
주 52시간 근무 예외 논의는 삼성의 위기 속에 떠올랐다. 일할 맛 나는 기업 문화를 회복하고 직원의 성취감을 높인다면 주 52시간제 예외로 얻으려던 목표도 시나브로 달성될지 모른다. 주 52시간제 예외에 대한 정치권의 결단을 기다리며 내부 목소리에 한 번 더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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