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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으로 만든 성탑에 들어가는 열쇠를 쥔 융 [국경복의 드림 톡(talk)]

융의 예지적인 꿈을 형상화해 필자가 그린 그림




칼 융(Carl Gustav Jung, 1875~1961)이 세상을 떠나기 약 두 달 전에 꾼 꿈이다.

‘꿈에 그는 낯선 곳에서 볼링겐(Bollingen)에 있는 ‘그의’ 성탑으로 다가갔다. 그 성탑은 완전히 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는 손에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어떤 목소리가 ‘탑’이 완성되어 그가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완전한 고독(주위에는 사람이 없었다)과 그 장소의 절대적인 고요함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는 바닷가를 보았다. 이미 담비 한 마리가 새끼에게 물에서 헤엄을 어떻게 치는지 가르치고 있었는데, 새끼는 아직 혼자서는 헤엄을 칠 수 없었다.’

이 꿈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볼링겐이라는 장소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볼링겐은 스위스 취리히의 루체른(Lucerne)에 있는 호숫가 한 마을에 있는 융의 별장이다. 융에게 이 자그마한 성탑은 이미 지상의 형태로 있는 더 큰 내면의 인간, 또는 자기의 그릇이었다.

이 성탑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처음부터 성탑은 내게 성숙의 장소가 되었다. 어머니의 품이거나 어머니의 모습이며, 그 속에서 나는 다시 존재할 수 있었다. 내가 어떠하며, 어떠했으며, 어떻게 될 것인가…. 볼링겐에서 나는 나의 가장 진정한 존재 속에, 나에 상응하는 것 속에 있었다. 나는 때때로 시골 경치와 사물 속으로 뻗어나갔고, 각각의 나무 속에서, 파도가 첨벙거리는 소리 속에서, 구름 속에서, 오가는 동물 속에서, 그리고 모든 사물 속에서 살았다…”

융은 자신의 꿈을 이렇게 해석했다. “자신의 성채가 내세에 있는 그의 원래의 형태, 즉 자기(Self, 개인의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일컫는 전체 정신)의 지상에 있는 모상(模像, 모방하여 만든 상)일 뿐이다. 꿈은 이제 ‘내세에 있는’ 자신의 집이 이주할 수 있도록 완성되었음을 나에게 말한 것이다.“

1961년, 융은 삶을 마감한다. 그의 나이 86세였다. 자신의 죽음을 예지한 이 꿈에서는 평생 동안 인간의 정신을 깊이 탐구했던 달관한 학자의 인생관이 엿보인다. 꿈에서 융은 완전한 고독과 절대적인 고요함이 깃든 완성된 탑에 들어갈 것이라는 의미를 알아차린다. 아마도 그는 평화로운 마음으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을 줄 탑이 금으로 된 탑이다. 금탑은 그가 평생 쌓은 학문적으로 업적일 것이고, 금은 변하지 않고 고귀한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세운 업적은 사후에도 변함없이 값진 평가를 받게 될 것임을 예지하고 있다.

1875년, 융은 스위스의 한 호수가 마을인 캐스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사였고, 어머니는 몸이 아파서 요양생활을 했기 때문에 주로 아버지와 생활을 했다. 아버지는 친절하고 정열적이며 학구적이었다. 융은 아버지에 대해 “그 시절에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존재였다”고 회상했다.



1900년,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을 발표했던 바로 그해, 당시 25세였던 융은 의과대학을 마치고 스위스 취리히 대학의 한 정신병원에 조수로 취직했다.

‘... 이런 상황에서 프로이트는 나에게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히스테리와 꿈의 심리학에 대한 기본적인 탐구를 그가 했기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견해는 나에게 개별적인 사례들에 대한 보다 폭넓은 연구와 이해의 길을 열어주었다. 프로이트 자신은 정신의학자가 아니고 신경학자였지만 심리적인 문제를 정신의학에 도입했다.’

1907년, 융은 비엔나에 있던 프로이트를 방문하고 그가 명석하고 비범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09년 융은 다시 프로이트를 만났는데, 과학성과 초과학성에 대한 토론과정에서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한때 융은 프로이트의 열렬한 지지자였지만, 프로이트의 성(sex)에 관한 이론과 꿈의 해석 등에 대해 회의를 품고 결국 결별한다.

융은 자신이 새롭게 창설한 학파의 이론을 ‘분석심리학’이라고 불렀다. 1916년에 무의식의 구조를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는 개인무의식과 집단무의식, 페르소나, 아니마, 아니무스, 개성화 등의 개념도 밝혔다. 또한, 오늘날 잘 알려져 있는 성격심리에 대한 MBTI도 융의 이론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융은 처음에 자신의 자서전 출간을 거부했으나, 자신이 죽은 후를 조건으로 동의했다. 융이 사망한 다음해인 1962년, 그의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이 출판되었다.

1959년, BBC와의 인터뷰에서 기자는 그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신을 믿었습니까?” “예, 믿었습니다” “지금은요?” “...나는 신을 압니다”

서경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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