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주 52시간제는 2018년 공공 부문과 대기업을 시작으로 모든 사업체에 확대 적용됐다. 시장에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면 일시적인 초기 부작용도 있지만 대부분 점차 적응해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유독 주 52시간제는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업체들이 심각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런 호소에 아랑곳하지 않고 주 4일제 도입까지 거론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거래 당사자가 서로 합의한 조건으로 거래가 성립되므로 당사자 모두가 윈윈(win-win)하고 그만큼 경제 성과도 높아진다. 다만 시장도 불완전한 부분이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 일례로 독점력 때문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의 거래는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 있고 상대방과 품질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아예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반독점법이나 품질 인증, 제조물 책임법과 같은 규제는 거래에 장애가 되는 요인을 해소하므로 거래를 활성화하고 소비자 만족도를 높이는 보완적 기능을 갖는다.
이와 달리 부작용이 더 큰 규제도 많다. 당사자들이 서로 자유의지로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부분까지 획일적인 잣대로 불필요하게 간섭하는 규제들이 대체로 그러하다. 거래 당사자들의 니즈(needs)는 제각각이기 때문에 거래마다 합의되는 조건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이를 무시하고 동일한 조건을 획일적으로 강제하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례는 유난히 노동시장에 많은데 주 52시간제가 대표적이다. 생산과정과 근로 형태가 천차만별인 사업장과 근로자들의 특성을 무시하고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못 박은 것은 시장 기능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본 원리를 거스르는 것이다. 그만큼 사업체들이 적응하는 데 애를 먹고 있고 노동시장에도 심각한 부담을 주고 있다.
부작용을 유발하는 규제라도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명분이 있으면 때로 합리화되기도 한다. 최저임금제의 경우 고용을 감소시키는 부작용이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 차원에서 노동의 가치가 지나치게 하락하는 것을 예방한다는 대의명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주 52시간제는 명분마저도 근거가 미약하다. 무엇보다도 일을 더해서 돈을 더 벌겠다는 것을 정부가 막을 합리적인 명분이 있을 리 없다. 장시간 근로를 금지하면 근로자 워라밸이 개선될 것이라 내세우지만 그것도 고임금에 안정적 일자리까지 누리고 있는 일부 대기업 정규직 노조 근로자들이나 기대할 수 있는 혜택이다. 근로자를 늘릴 여력이 없어 부득이 근로시간을 늘려야 했던 영세 중소업체들,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장시간 근로도 마다하지 않던 저임금 근로자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일 뿐이다.
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누겠다는 명분도 처음부터 비현실적이었다. 일자리 나누기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례도 없고 우리의 주 52시간제 역시 고용을 늘리는 효과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양극화 심화라는 부작용이 따라왔다.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더 노동집약적이고 생산 수요의 변동성과 불확실성도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에 획일적인 근로시간 규제는 중소 영세업체에 더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결국 매출과 일자리 감소의 피해도 대기업이나 정규직 노조 근로자가 아니라 영세업체와 임시·일용직 취약 계층 근로자들에게 집중됐다.
노사가 자발적으로 합의한 근로시간을 규제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규제를 꼭 해야 했다면 근로자에게 장시간 근로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하거나 연장근로수당 할증률 인상 등 훨씬 시장 친화적인 방식도 가능하다. 규제 당국에도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만큼 지금과 같은 모습의 주 52시간제는 오직 대기업 정규직 노조 근로자들만의 워라밸을 위한 것일 뿐 영세업자와 취약 계층에게는 아픔을 준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럼에도 입법이 강행된 것은 정치인들의 셈법 때문이었다. 노총의 지지가 필요했던 진보 정부는 합리적 규제보다는 선명성, 홍보성이 높은 강한 규제를 강행했다. 진보 세력의 비호를 받아 이미 정치 권력으로 성장한 노총에 기대어 자신들의 표를 세느라 여념이 없는 정치인들의 셈법 속에 힘없고 백 없는 취약 계층의 아픔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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