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과 요양병원에서도 유권해석으로 엑스레이(X-ray)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데도 유독 한의원에 대해서만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을 들어 설치신고를 거부하고 있으니 부당하지 않습니까?"
정유용 대한한의사협회(한의협) 수석부회장은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엑스레이 기기를 들이고 행정절차를 마치는 대로 진료에 활용하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 과학의 산물을 활용해 최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의료인으로서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인 만큼, 협회 임원들이 엑스레이 활용에 앞장서겠다는 것이다.
한의사들이 돌연 엑스레이 사용을 선언하고 나선 배경은 엑스레이 기기를 사용하다 기소된 한의사가 최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데 기인한다.
수원지방법원은 엑스레이 방식의 골밀도 측정기를 환자 진료에 사용해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한의사 A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지난달 17일 1심 판결과 같은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상고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이 판결은 최종 확정되자 본격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현행 보건복지부령인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 제10조 제1항 별표6에는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 기준'으로 의사, 치과의사(치과병원인 경우) 또는 방사선사가 적시돼 있다. 의료법상 의료인에 해당하는 한의사가 빠져 있다보니 한의의료기관들조차 엑스레이를 설치해 운영하질 못했던 실정이다.
윤성찬 한의협 회장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의 안전관리에 관한 규칙이 1995년 제정될 당시 별다른 기준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의의료기관의 안전관리자 신고를 받지 않았다. 이후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이 신설될 때도 ‘한의사’와 ‘한의원’을 넣지 않은 채 지금에 이르고 있어 불합리와 불공정함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정신병원과 요양병원은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 중 의료기관의 종류에 나열되지 않았음에도 ‘그 밖의 기관’에 포함된다고 보고, 한의원은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한의협에 다르면 법원은 이번 판결문에서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 규정이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할 수 있는 자를 한정하는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한의원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지만 '그 밖의 기관'에서 제외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이번 법원 확정 판결로 한의사와 한의원의 엑스레이 사용이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게 한의협의 입장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단용 방사선 안전관리책임자에 ‘한의사’가 빠져있는 탓에 실제로 엑스레이 기기를 한의원에 설치하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 의료기관에서 엑스레이 같은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를 설치해 사용하려면 질병관리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현행법상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의 자격기준에 여전히 한의원과 한의사가 제한돼 있다보니 승인이 나질 않는 탓이다. 실제 경기도 성남시 소재 한 한의원은 관할 분당구보건소에 엑스레이 사용을 신고했지만 미승인 처리됐다. 분당구보건소의 유권해석 요청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의협은 엑스레이 외에도 초음파, 뇌파계 등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놓고 의사단체와 사사건건 부딪혀 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복지부의 유권해석을 확보하고 본격적으로 영역을 넓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한의의료기관이 시행하는 진료행위 중 상당수가 근골격계질환이라는 점에서 엑스레이를 통한 진단이 가능해지면 수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한의협은 한의사의 엑스레이 활용이 환자의 진료 선택권과 진료 편의성을 높일 것이라는 논리를 펼쳤다. 골절인지 염좌인지가 모호한 환자는 물론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추나요법을 시행할 때도 엑스레이 검사를 받기 위해 양방의료기관에 추가로 내원하는 불편함과 진료비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란 논리다.
김석희 한의협 홍보이사는 "대만의 경우 2018년부터 중의사가 엑스레이 등 현대의료기기를 진료에 자유롭게 활용하도록 허용했고 건강보험도 적용해 국민에게 의료비용 혜택을 주고 있다"며 "보건복지부는 조속히 '진단용 방사선 발생장치 안전관리책임자 자격기준'에 한의사를 추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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