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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항저우의 마법은 없다

‘딥시크’의 비용 절감 이미 예견된 일

中 AI 기술보다 생태계를 주목해야

량원펑, 충분한 보상·강한 동기 부여

단기 성과보다 産學政 협력 구축을


“구운 가지가 식기도 전에 식탁 위 냅킨에는 자율로봇의 새로운 컴퓨팅 아키텍처가 그려졌다.”

중국의 설 연휴인 춘제(春節) 전날 지식 플랫폼 즈후에 올라온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의 글이다. 그는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과 항저우 윈치의 야식 가판대에서 나눈 대화를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냅킨에 그린 아키텍처는 다음 날 새로운 인공지능(AI)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됐다. 량원펑은 “항저우의 여섯 마리 작은 용(중국 테크 6대 스타트업)은 고립된 섬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AI 모델 R1의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 AI 산업 독주의 종말을 예측하는 의견도 나왔다. 딥시크가 챗GPT와 비교해 18분의 1 수준의 개발 비용으로 효율에서 이를 뛰어넘는 모델을 내놓자 미국은 허를 찔렸다. 그러나 AI 개발 비용은 어차피 낮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2023년에 나온 GPT-4와 지난해 GPT-4o을 비교하면 AI 가동에 쓰는 토큰의 한계비용이 150배 이상 감소했다”고 했다. 2022년에 개발된 챗GPT에 비해 2024년에 출시된 딥시크의 모델 개발 비용이 감소한 것은 필연적이었다. 비용 절감보다 주목할 것은 딥시크를 탄생시킨 항저우의 AI 생태계다.

딥시크 생태계의 출발점은 항저우 저장대 즈진강 캠퍼스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딸 시밍쩌의 출신 학교로 유명한 저장대는 기계공학·전자공학·화학공학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왔다. 량원펑도 이 대학의 전자정보공학과 출신이다. 저장대의 경쟁력은 기업과의 협업에서 나온다. 미국 빅테크의 후원이 쏟아지는 매사추세츠공과대(MIT)의 연구실처럼 지속적으로 협업이 이어진다. 저장대 AI 연구실 간판에는 알리바바·바이두·핀둬둬 등 중국 빅테크의 이름이 협업자로 등재돼 있다. 이를 통해 저장대의 AI 연구논문 저자 수는 2020년 세계 89위에서 2024년 6위로 급상승했다.

2011년 시작된 알리바바 클라우드의 윈치대회(APSARA)는 항저우 AI 생태계의 원동력이다. 윈치대회는 중국 기술 혁신의 방향을 제시해왔다. 알리바바의 창업자인 마윈은 2015년 디지털 기술(DT)을 강조했고 4년 뒤 장융 CEO는 AI 데이터를 공개했다. 3년 동안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던 마윈이 딥시크와 함께 등장한 것도 이 대회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다. 공개 석상 복귀 후 마윈은 클라우드 및 AI 분야에 향후 3년간 3800억 위안(약 75조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항저우의 개방적인 투자 문화는 딥시크 탄생의 발판이 됐다. 량원펑을 비롯한 항저우의 투자자들은 기존 기술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개발할 인재에게 투자했다. 퀀트 투자로 부를 쌓은 량원펑은 젊은 창업가들에게 “세상을 바꿔보자. 자금은 내가 조달할 테니 너희는 명성을 만들어 보라”며 독려했다. 이러한 접근법은 젊은 천재들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했다.

딥시크의 등장은 예견된 일이었다. 하드웨어와 알고리즘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은 오픈AI나 알리바바에서도 가능했지만 항저우의 AI 스타트업이 가장 먼저 현실화했다. 세상을 놀라게 한 AI 혁신이 베이징이 아닌 항저우에서 일어난 것을 두고 ‘항저우의 마법’이라는 표현도 등장했지만 단순한 마법은 아니다. 항저우는 10년이 넘는 시간을 두고 AI 생태계를 만들었다. 1995년생 AI 천재 뤄푸리가 샤오미의 1000만 위안(약 19억 원) 연봉 제안을 거절하고 창업을 고민하는 것도 금전적 보상보다 항저우 생태계의 미래에 베팅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AI 혁신 기술 개발, 비용 절감, 오픈소스 활용 등은 딥시크 충격 이전에도 한국 AI 기업들이 추진하던 전략이다. 딥시크는 AI 생태계 조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운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중요하지만 정부·기업·대학 등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AI 산업을 적극 육성하려면 정부는 규제 혁파, 세제·재정 지원, 데이터 활용, 인프라 구축 등 전방위 정책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또 기업은 과감하게 투자하고 인재들이 부담 없이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단기 성과에만 집착하면 한국은 AI 경쟁에서 뒤처질 뿐 아니라 미국과 중국의 AI 기술에 종속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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