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의 군주 레오니다스 1세는 고대 그리스를 대표하는 영웅이다. 그의 전설적인 무용담은 서구 역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통해 전해졌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가 이끄는 30만 대군이 그리스를 침략하자 레오니다스는 그리스 남부 테르모필레 계곡에서 방어전을 펼쳤다. 300명의 스파르타 정예 용사로 구성된 그의 군대는 지형적 이점을 활용해 페르시아군의 진군을 지연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압도적인 수적 열세로 인해 이 전투에서 모두 전사했다.
전쟁사적으로 레오니다스의 군대는 패배했다. 하지만 그들의 희생은 그리스 연합군에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며 그리스 영토 내에서 페르시아군을 퇴출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레오니다스의 명성은 전투에서의 승패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패배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적에 맞선 용기와 희생정신이 레오니다스를 불멸의 영웅으로 추앙받게 했다.
레오니다스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테르모필레 전투는 오랜 기간 동안 유럽 예술의 소재로 활용됐다. 회화 분야에서는 프랑스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의 역사화가 유명하다. 이 작품은 1800년에 제작되기 시작해 1814년 10월께에 완성됐다. 이렇게 긴 제작 기간이 소요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당시 다비드는 유럽 최고의 권력자 나폴레옹을 위해 활동했다. 군사 쿠데타에 성공해 종신 집권체제를 수립했던 나폴레옹은 자신의 통치행위를 미화하기 위한 선전 도구로 다비드의 회화를 활용했다.
이런 나폴레옹에게 레오니다스의 이야기는 그리 유쾌한 주제는 아니었다. 우연히 이 작품의 제작 장면을 목격한 나폴레옹은 “위대한 역사적 영웅일지라도 전투에서 패배한 군인을 기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라는 말을 남겼다. 탁월한 군사 전략가로서 스스로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한 그다운 언사다. 하지만 이 그림이 완성된 1814년은 나폴레옹의 몰락이 시작된 해다. 다비드는 그의 운명을 예견한 듯 마지막 전투를 준비하는 레오니다스의 모습을 장엄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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