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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대백색함대





1904년 12월 16일 미국 버지니아주 노퍽 해군기지에 16척의 최신예 전함이 위용을 드러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세계 일주 작전명령을 받고 출항에 나선 것이다. 이 전함들은 평화를 상징하는 흰색으로 도색돼 ‘대(大)백색함대’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함대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넘나들며 미주·아시아·유럽 주요국들을 방문했다. 14개월간 총 8만 ㎞에 육박하는 대장정이었다. 한때 열강의 식민지였던 미국이 전 세계 바다에서 대규모 해군 작전을 펼칠 수 있음을 과시한 것이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급성장하는 국력을 토대로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대백색함대를 출범시켰다. 전임자였던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이 스페인과 전쟁을 벌여 괌·필리핀·푸에르토리코를 점유했는데 루스벨트도 이 같은 팽창주의 기조를 이어받은 것이다. 1905년 일본이 쓰시마 해전에서 막강했던 러시아제국 함대를 전멸시키며 파란을 일으키자 루스벨트는 미 해군 현대화 정책을 서둘렀다.



대백색함대를 계기로 가속화된 해군력 강화는 미국의 조선 산업 부흥으로 이어졌다. 특히 조선소들이 자리 잡았던 뉴욕·펜실베이니아·버지니아·캘리포니아 지역의 경제는 일자리 창출 등으로 더욱 발전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조선업은 점차 생산비 상승, 기술 혁신 저하, 정부 지원 감소의 삼중고에 직면해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는 군함 생산능력 저하 및 관련 예산 부담 급증으로 이어져 미 해군 전력을 약화시켰다. 미군 함정 수는 2023년 기준 296척에 그쳐 낮은 인건비와 건조 기술 향상으로 군함을 대량 건조해온 중국(355척)에 역전당하기에 이르렀다.

지난달 출범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해군력 증강과 조선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해외 건조 선박의 운행을 제한하는 존스법의 개정까지 모색하며 한국 등 동맹국의 조선 업계에 협조를 구하려 하고 있다. 한미 양국이 조선·방산 등의 산업 협력 방안을 마련해 서로 경제·안보에서 ‘윈윈’할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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