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 구리 수입에 대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한 조사를 지시했다. 232조는 특정 수입 품목이 미국의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하거나 고율의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항이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철강, 알루미늄, 수입 자동차 등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는데 2기 행정부에서는 구리가 첫 조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철강·알루미늄에 이어 구리에도 고율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이 첨단산업 전반의 소재 공급망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구리에 대해 232조 조사를 지시한 것은 구리가 전기차·항공기 등 제조업뿐 아니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의 전력망 구축에도 필수적인 자원이기 때문이다. 과잉 생산과 덤핑을 무기로 전 세계 구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중국을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관세 폭격 예고로 공급 차질 전망이 나오면서 이날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는 연초 대비 7.22%나 상승했다. 트럼프가 다시 꺼내든 232조 적용은 향후 다른 수입 광물이나 국가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구리 관세가 도입되면 한국도 영향권에 들어간다. 한국은 지난해 5억 7000만 달러 규모의 구리 제품을 미국에 수출했고, 4억 2000만 달러를 수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무기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 파상공세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구리 관세 부과를 계기로 첨단산업에 활용될 광물의 공급망을 재점검해야 한다. 관세 협상에서는 한국이 적극 투자와 첨단기술 협력을 통해 미국 제조업 부활의 최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우리 기업들의 미국 내 직접 투자(FDI)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도 트럼프 행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 232조 조사를 계기로 미국의 관세 폭탄 정책이 여러 품목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시나리오별로 정교한 협상 전략을 세우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전방위로 전력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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