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조항을 뺀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방식으로 강행 처리하기로 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7일 “국민의힘의 몽니에 진척이 없는 반도체특별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추진하기로 했다”면서 “법정 심사 기간 180일이 지나면 지체 없이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 52시간제 문제에서 오락가락 행보로 혼란을 초래한 거대 야당이 법안 표류의 책임을 여당에 떠넘기는 것도 모자라 ‘알맹이 빠진’ 법안을 밀어붙이기로 한 것이다. 여야 합의 절차를 내팽개친 입법 폭주이자, 반쪽짜리 내용과 시간 끌기로 반도체 산업의 조속한 경쟁력 강화라는 입법 취지를 약화시키는 무책임한 행태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가 대항전 차원의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에서 K반도체의 생존 여부는 초격차 기술 확보에 달려 있다. 중국에도 뒤처지기 시작한 기술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마음껏 연구와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미국·중국·대만 등 주요 경쟁국들은 밤새 연구에 매진하는데 우리 기업들만 경직적인 주 52시간제 족쇄에 묶여 연구실 불을 꺼야 한다면 K반도체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여야 합의를 무시하고 ‘패스트트랙’ 절차를 밟으면 말이 ‘신속’이지 법제화까지 수개월이 걸릴 수밖에 없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면 국회 상임위원회 법정 심사 180일, 법제사법위원회 90일, 본회의 부의 후 60일 등 최장 330일을 거친 뒤 본회의에서 표결하게 된다. 여당이 의사봉을 쥔 상임위 일정은 단축하기 어렵다. ‘속 빈 강정’과 같은 법안을 그것도 수개월 뒤에 처리하겠다는 민주당에 진정 반도체 육성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반도체는 우리의 수출과 경제·안보를 뒷받침하고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전략산업이다. 전 세계가 기술 혁신에 촌각을 다투는 와중에 거대 야당이 ‘주 52시간제 몽니’를 부리며 시간을 끈다면 우리 반도체 산업이 도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민주당은 노조 눈치 보기에서 벗어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을 포함하는 온전한 반도체특별법 처리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 정부와 국회가 규제 혁파, 전략산업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을 위한 전방위 지원에 총력을 기울여야 인공지능(AI)·반도체 기술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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