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온 여당이 현금 지원성 정책을 연이어 내놓은 데는 12·3 비상계엄 이후 이어지는 탄핵 정국으로 경기 침체 상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전 국민에게 같은 돈을 쥐여주는 더불어민주당식 ‘포퓰리즘 추가경정예산’과 달리 도움이 절실한 취약 계층에 ‘핀셋 지원’을 함으로써 내수 불황을 완화하겠다는 게 국민의힘의 구상이다.
민생 추경과 관련해 여야 간 차별점을 보면 국민의힘은 취약 계층 선별 지원, 민주당은 전 국민 일괄 지급으로 요약된다. 28일 국민의힘이 내놓은 1인당 25만~50만 원 선불카드 지원 사업 대상자도 소득 인정액이 중위 소득 30~50% 이하로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기초수급대상자’와 바로 위 계층으로 잠재적 빈곤층인 ‘차상위계층’으로 제한된다.
규모는 대략 270만 명으로 재원은 최대 1조 3500억 원이 필요하다. 앞서 민주당이 전 국민 5122만 명에게 1인당 25만 원을 지역화폐로 지급하자고 제안한 13조 원 규모의 민생 지원안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재명 대표는 입만 열면 부자 프레임을 내세우지만 정작 초부자들에게까지 25만 원을 나눠주겠다고 한다”며 민주당이 내세우는 보편적 지원보다는 여당의 선별 지원 방식이 적절하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문제는 탄핵 정국이 조기 대선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현금 살포 경쟁이 도를 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국민의힘은 24일 전국 소상공인·자영업자 760만 명에게 1인당 100만 원의 바우처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경안에 담기로 했다. 경기 악화로 고전하는 영세업자들이 바우처 형식으로 전기·가스·수도와 같은 공과금은 물론 보험금·판촉비 등을 납부할 수 있게 하는 방식인데 약 7조 6000억 원이 들어간다. 핀셋 지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선불카드와 바우처 지원을 합치면 최대 9조 원가량의 재원이 소요된다. “야당보다는 적은 규모”라고 자위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만만찮은 자금이 투입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여야가 공히 절실하다고 말하는 신산업 추경 등 고용 유발 효과가 큰 분야에는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구나 정치권은 상속세·근로소득세 등에서 감세 공약을 쏟아내는 상황이다. 전통적으로 감세를 통한 소비·투자 촉진을 부르짖어온 여당뿐만 아니라 우클릭으로 당 외연 확장을 노리는 야당까지 감세 드라이브에 가세해 현금 살포는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올해 나라 살림 적자가 70조 원을 훌쩍 넘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판에 추경은 재정의 효율성에 중점을 둬야 한다”며 “국회가 선거를 겨냥해 경쟁적으로 돈을 뿌리는 게 아니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국정 과제 차원에서 정책들을 마련하고 핵심적인 사업 위주로 돈을 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도 “만약 조기 대선 정국이 현실화하게 되면 현금 살포 유혹에 정치권은 더 취약해질 개연성이 높다”며 “가뜩이나 기업의 실적 악화로 세수 부족이 심각한데 쓸 돈은 많아져 재정 건전성에 주름살을 생기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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