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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가계빚은 왜 항상 최고치일까

손병두 토스인사이트 대표





‘가계빚 역대 최고치.’

가계부채 통계 발표 때마다 흔히 보는 기사 제목이다. 지난달 1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가계신용 통계를 두고도 일부 언론은 이런 제목을 달았다. 제목만 보면 상당히 큰일이 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제목이 정책 당국에 가하는 심리적 압박도 만만치 않다.

가계부채가 가진 통계적 특성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고 싶다. 가계부채는 본질적으로 국민소득이나 인구처럼 과거 수치가 누적되는 성격을 띤다. 경제에 큰 충격이 없는 한 가계부채는 증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말이다. 좀 과장해서 비유하자면 마치 나이 드는 것을 두고 “태어난 이래 가장 늙은 날”이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달까.

좀 재미없지만 통계학적으로 이를 더 알아보자. 시계열 분석을 함에 있어 가계부채는 ‘단위근(unit root)’을 포함하는 변수로 알려져 있다. 단위근을 가진 시계열 데이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누적된다. 단위근을 포함하는 시계열 변수로 국민소득·주택가격·인구 등을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이들 통계는 매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충격이 없는 한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변수들이라 오히려 감소한 게 뉴스거리가 돼야 한다. 필자도 공무원 생활 중 뒤늦게 대학원에 가서 이 개념을 이해했다.



시간이 지나며 증가하는 특성을 가진 변수들은 유사한 특성을 지닌 변수로 나눠보거나 그 증가율 추이를 살펴야 한다. 정부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나 가계부채 연간 증가율을 관리 지표로 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80% 수준까지 감축하겠다’거나 ‘가계부채 증가율을 경상성장률 이내로 관리한다’는 목표를 정부가 반복적으로 밝히는 이유다. 한국은행의 보도 자료에도 “가계신용 규모는 경제성장, 금융시장의 자금 중개 기능 제고 등에 따라 늘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가계 부문의 재무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금융자산 규모 또는 부채 상환 능력 등을 종합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토가 달려 있다. 단순히 체중이 늘었다고 해서 무조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근육량과 체지방률을 함께 봐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가계부채 문제를 가볍게 여기자는 말은 아니다.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속한다. 또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고 내수를 위축시키는 주범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관리하는 노력과 이를 올바르게 표현하자는 것은 별개 문제다. 가계부채가 사상 최고치라면 인위적으로 절대 규모를 줄여나가야 할 텐데 그 과정에서 경제가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위기를 겪지 않고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축소)을 한 경우는 국제적으로 굉장히 드물다”고 언급했다. 무리한 가계부채 축소는 경기 둔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디레버리징을 하더라도 점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통계를 다룰 때는 숫자의 맥락과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가계부채 총액이 사상 최대라는 것보다는 소득 대비 부채비율, 상환 능력, 대출 구조 변화 등이 중요한 지표다. 우리가 이런 면에서 건전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가계부채를 논할 때 절대 규모보다는 증가 속도나 비율, 상환 능력 등이 중심이 되기를 기대한다. 비록 듣는 이들 입장에서 직관적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경제를 바라보는 눈이 더 냉철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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