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일본 의존도가 높은 반도체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는 작업에 다시 속도를 높여 주목된다. 미국·일본·중국·대만 등 반도체 패권 다툼이 심화하는 가운데 한일 관계가 언제든 악화할 가능성에 대비하는 포석으로도 읽힌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DS) 부문이 ‘불화아르곤(ArF) 블랭크 마스크’를 국내산으로 대체하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 측은 이를 위해 ArF 블랭크 마스크를 생산 중인 에스앤에스텍(101490)과 긴밀히 협력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핵심 관계자는 “삼성이 소량의 국산 ArF 블랭크 마스크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특정 공정에 본격 도입하기 위한 평가를 시작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ArF 블랭크 마스크는 반도체 노광 공정에 필수 소재다. 노광은 동그란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를 찍어내는 작업이다. 빛이 회로 모양을 머금고 웨이퍼로 향하려면 ‘마스크’라는 틀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 마스크를 제작하기 위한 기본 재료가 블랭크 마스크다. 전체 노광 단계에서 약 40% 이상을 차지하는 필수 소재이기도 하다.
삼성전자의 ArF 블랭크 마스크 조달에는 일본 소재 회사인 호야의 비중이 압도적이다. 대다수 ArF 노광 공정이 호야가 공급한 소재에 맞춰 세팅됐을 만큼 일본 업체의 비중이 크지만 향후 단계적으로 국산 제품으로 대체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파악된다. 한 단계 위 제품인 극자외선(EUV) 블랭크 마스크의 대체재 개발도 삼성은 에스앤에스텍에 우선순위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ArF 블랭크 마스크뿐 아니라 일본 의존도가 높은 소재들의 국산화 시도에 최근 힘을 싣고 있다. 일본 미쓰이화학이 주도하는 EUV용 펠리클의 경우 에프에스티(036810)와 함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고대역폭메모리(HBM) 핵심 소재로 각광받는 비전도성접착필름(NCF)도 LG화학(051910)과 개발하고 있다. NCF는 일본 레조낙이 삼성에 100% 공급 중이다.
삼성전자가 소재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것은 1차적으로 인공지능(AI) 혁명이 촉발한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응해 한두 개 업체가 독점하는 공정용 소재를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한미일은 물론 중국·대만과도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을 염두에 뒀다.
일본은 최근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라피더스 등 새로운 칩 제조 기업을 육성하고 있는데 2019년과 같은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규제 등에 다시 나서면 국내 반도체 제조 라인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최근 국내외 정치 상황의 변화 속에 한미·한일·한중 관계의 변동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면서 “삼성이 다각도로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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