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을 싫어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트럼프는 유럽 동맹국 대부분이 국내총생산(GDP)의 2%를 국방비로 지출하자는 합의를 무시하고 미국에 무임승차하고 있다며 여러 번 불만을 토로했다. 국방비 지출을 더 많이 하지 않으면 미국은 나토를 탈퇴하고 러시아가 유럽을 공격하도록 부추기겠다고 협박한 적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에게 나토와 같은 다자 협정은 거추장스럽다. 첫 내각회의에서 그는 “유럽연합(EU)은 미국을 착취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게 존재 이유”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여전히 세계 최강국인 미국은 양자 관계로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외에도 트럼프가 유럽 동맹을 싫어하는 이유는 많다. 유럽의 지도자들은 종종 트럼프와 ‘맞짱’을 뜨려 한다. 트럼프와 눈인사조차 하지 않은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17초 동안 기싸움 악수를 하다가 트럼프 손등에 멍 자국을 남긴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한마디도 지지 않고 트럼프에게 대든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그 예다. 이에 비해 최근 트럼프와 정상회담을 개최한 아시아 정상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그랬고, 특히 일본의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아부의 기술’의 진수를 보여줘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말을 들은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무색할 정도였다.
트럼프가 나토를 싫어하는 가장 근본적 이유는 유럽이 미국의 핵심 국가이익에 해당하지 않으며 따라서 유럽의 분쟁에 연루돼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다. 아울러 러시아를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의 안보는 유럽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 미국과 유럽은 영화 ‘헤어질 결심’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갈라서고 있지만 그들의 이별은 어느 정도 예견된 시나리오였다.
관건은 미국의 아시아 동맹이다. 다수의 전문가는 아시아 동맹은 그래도 무사할 것으로 전망했다. 주지하다시피 트럼프는 중국을 주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속한 종결 추진에는 미국의 외교 안보 자원을 중국 견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한국·일본·호주 등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들은 중국 견제의 관점에서 미국의 유용한 전략자산이다. 트럼프가 관세 인상과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요구하겠지만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라도 동맹 관계를 일방적으로 훼손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 견해였다. 그런데 최근 트럼프의 폭주를 보면 미국의 아시아 동맹도 유럽 동맹과 같은 꼴을 당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어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목표임을 벌써 세 번이나 재확인했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을 고려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미 국무부는 홈페이지에서 ‘우리는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삭제했다. 대만에 대한 지지와 대중국 강경책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정작 트럼프가 이러한 입장을 확인해준 적은 없다. 오히려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군사개입을 할 것이냐는 질문에 “절대로 답하지 않을 것이다. 결코 그런 상황(대만 방어)에 처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 원칙에 얽매일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가 중국과 “무역 관계 조정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거래(wide-ranging deal)’를 원한다”고 분석했다. 협상 테이블에 핵 군축 문제 등 안보 현안도 올려놓고 싶어 하는데 미중 긴장 완화를 원하는 일론 머스크가 뒤에서 트럼프의 거래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트럼프 2기의 중국 때리기는 다소 속도감이 떨어진다. 만약 트럼프가 중국과 ‘그랜드바겐’을 추구한다면 한반도와 대만 문제를 장기판의 ‘졸(卒)’ 정도로 다루며 주고받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내 팽배한 반중 정서를 고려하면 미중 대타협은 가능성이 그리 높아 보이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하지만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나.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할 때임은 분명하다. 한국은 일단 자강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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