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를 무기로 투자를 강요해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번에는 다른 나라의 통화정책에도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중국의 통화 약세(절하) 정책이 미국 산업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며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로 대응하겠다”며 노골적인 보복 방침을 밝히면서 외환시장이 크게 출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관세 인상의 이유를 언급하며 “일본 엔화든, 중국 위안화든 그들이 통화가치를 낮추면 우리에게 불이익이 초래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를 매우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관세”라며 “그들이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관세로 대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중국 양국의 통화정책, 즉 자국 통화 약세 유도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의 이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광업·건설기계 대기업인 미국 캐터필러를 언급하면서 “일본과 중국 등의 국가들이 자국 통화를 약세로 만들면 미국에서 트랙터를 제조하는 것은 매우 어려워진다”고 주장했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면서 미국 내 생산비용이 높아지고 수출 경쟁력이 약화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도 소셜미디어에서 엔저에 대해 “미국 제조업의 수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대참사”라고 지적하며 불만을 드러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직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달러 환율은 150엔대 중반에서 149엔대 초반까지 하락(엔화 가치 상승)하며 엔화 강세를 보였다. 4일 도쿄 외환시장에서도 이런 흐름을 받아 148엔대 후반까지 조정되기도 했다. 일본은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직접 나서 “일본은 통화 약세 정책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부인했다.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는 마이너스 금리로 엔저가 진행된 것은 사실이지만 2022년 이후 환율 개입으로 엔저, 달러 강세의 시정을 시도해왔다며 강변하고 있다.
일본 정부와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엔화 약세 견제가 단순 발언인지, 실제 개선 의지의 표명인지 진의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은행이 엔화 약세를 조정하기 위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나서면 일본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엔화가 ‘관세 협박’에 상승했다면 캐나다와 멕시코 화폐는 예고됐던 관세 폭탄이 터지자 급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3일 캐나다달러는 0.6% 오른 1.45캐나다달러까지 상승해 한 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멕시코페소 역시 0.9% 급등한 20.75페소까지 올랐다. 이는 미국달러가 상대적인 강세를 나타냈다는 의미로, 캐나다달러와 멕시코페소 가치는 모두 지난달 초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올 들어 캐나다달러와 멕시코페소화는 트럼프 관세 위협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며 등락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였다. 모넥스의 외환 투자자인 헬렌 기븐은 “백악관의 발언을 고려할 때 시장 변동성이 매우 클 것이며 오늘 캐나다달러와 멕시코페소의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용으로 활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관세가 철회될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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