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는 무조건 부과될 것입니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우리 정부 고위 관계자와 만난 애덤 포즌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 전망에 대해 이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간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엄포가 협상용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대규모 감세에 따른 세수 펑크를 관세로 메우겠다는 구상에 트럼프 대통령이 진심이라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4일 0시(동부 시각 기준)를 기준으로 멕시코와 캐나다산 수입품에 25%(캐나다산 에너지 제품에는 10%)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이 같은 예상은 현실로 다가왔다.
트럼프 경제팀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영향이 크지 않으며 물가가 오르더라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만드는 ‘성장통’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트럼프 무역정책 설계자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3일 CNBC 인터뷰에서 “우리의 ‘3D’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극적으로 낮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3D란 ‘규제 완화(Deregulation), 정부효율부(DOGE), 석유 등 에너지 시추(Drill) 확대’를 뜻한다. 관세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와 이로 인한 수입물가 하락 역시 트럼프팀이 관세로 인해 물가가 큰 폭으로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나바로 고문은 “관세로 인해 일어날 모든 일은 2차적인 사소한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미국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것이 이 길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등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우려를 제기했지만 다른 관료들이 1기 때도 물가 상승이 없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관세 리스크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우리 기업들의 우려도 증폭되는 분위기다. 현재 삼성·현대차·SK·LG·한화·포스코·CJ·LS 등 25개 그룹이 캐나다 110곳, 멕시코 91곳 등 총 201개의 북미 현지 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멕시코 누에보레온주에 공장을 둔 기아는 일단은 생산량 조정으로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제철은 미국 현대차·기아 등에 자동차 강판을 납품할 제철소를 설립하기 위해 텍사스·조지아·루이지애나주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LG전자는 공장 이전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테네시 공장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지만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는 “생산 시설 이전 등 적극적인 생산지 변화를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혀 공장 이전 가능성도 열어뒀다. 자동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직 관세 부과와 그 영향이 확정되지 않아 가정을 해서 대책을 논의할 수밖에 없다”며 “말 그대로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2018년과 같은 무역 전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트럼프 1기 때인 2018년 7월 미국은 중국산 제품 340억 달러 규모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시작으로 2019년 9월까지 약 66.4%에 해당되는 품목의 관세를 인상, 당시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율을 평균 3.1%에서 19.3%로 끌어올렸다. 당시 멕시코, 캐나다, 유럽연합(EU) 등의 철강·알루미늄 등에도 관세를 부과했다.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문제 삼았고 2018년 3월 재협상이 타결되기도 했다. 1차 무역 전쟁 영향으로 당시 세계 경제도 하방 압력을 받았다. 2018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3.6%였지만 2019년은 2.9%로 0.7%포인트나 떨어졌다.
실제로 미국의 관세 부과 조치에 캐나다와 중국은 보복 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캐나다는 플로리다주 오렌지를 비롯해 공화당 텃밭인 테네시주 위스키, 켄터키주 땅콩 등에 관세를 매겨 트럼프 대통령의 ‘아픈 곳’을 선별 타격하겠다는 전략이다. 또 핵심 광물, 에너지 조달 및 기타 파트너십 등과 관련된 제한을 포함해 다양한 비관세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도 3일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것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과의 협상 관련) 조정은 있을 것이지만 (미국에 대한) 종속은 없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미국 농부들이 관세 전쟁의 1차 희생양이 될 것으로 보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일부터 수입 농산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30년간 이어져온 북미 공급망을 깨는 극단적 카드를 꺼내 들면서 앞서 예고한 관세도 실제 부과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25% 관세, 이달 20일을 전후로 한 자동차와 반도체, 의약품에 대한 관세, 4월 2일 상호 관세 등을 예고한 상태다. 세계은행은 1월 보고서에서 트럼프 정부가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다른 나라가 상응 조치를 취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전망치(2.7%)보다 0.3%포인트가 내려갈 것으로 예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