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5일 대국민 사과문을 통해 선관위 고위직 간부들의 자녀 특혜 채용 문제에 대해 “선관위원장으로서 통렬한 반성과 함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선관위는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끊임없는 자정 노력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선관위는 전날에도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에서 선관위 통제 방안 논의가 진행된다면 적극 참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비리 온상’으로 전락한 선관위를 자정 노력이나 국회의 허술한 통제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선관위의 눈치를 봐야 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감사를 맡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선관위는 2023년 5월에도 고위 간부 자녀의 부정 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경력직 채용에 대한 자체 감사를 진행했으나 ‘아빠 찬스’의 전모를 밝히는 데 실패했다. ‘특혜 채용’ 혜택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당사자 10명이 여전히 정상 근무를 하는 것도 선관위의 도덕적 해이를 방증한다. 지난달 27일 감사원의 발표로 드러난 선관위 채용 비리는 가족·친척 채용 및 청탁, 면접 점수 조작, 인사 관련 증거 서류 조작·은폐 등의 비위가 10년간 최소 878건에 달했다. 만약 감사원의 감사가 없었다면 복마전 수준의 선관위 채용 비리가 고스란히 묻힐 뻔했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감사원이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관위를 직무감찰할 권한이 없다고 결정해 선관위의 구조적 부패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치 중립을 지키면서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해야 하는 선관위는 민주주의의 파수꾼이나 다름없다. 선관위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내부 부패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가족 기업’처럼 운영되는 선관위의 비리를 근절하려면 강력한 외부 감사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 특별감사관 도입은 물론 감사원의 적극적 역할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비대한 선관위 조직을 대폭 축소해 비리가 싹틀 수 없게 구조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대법관의 비상근 선관위원장 겸직 관행도 선관위의 중립성과 독립성 강화를 위해 바꿀 때가 됐다. 여야는 민주주의의 꽃으로 불리는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의 구조적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