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1년 넘게 이어지는 의정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집단 휴학 의대생들의 학교 복귀를 전제로 2026년 의대 정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되돌리는 안을 꺼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6일 대통령실 및 정부와 가진 긴급 비공개 회의 후 “내년 의대 모집 인원을 2024년과 같이 조정하고 2027년부터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반영하자는 게 현실적으로 타당하다”고 밝혔다. 당정이 사실상 전공의·의대생들의 반발에 백기를 들고 ‘의대 증원 조건부 백지화’에 합의한 것이다. 이로써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의료 개혁이 좌초되는 또 한번의 선례를 남기게 됐다.
정부가 개혁 후퇴에 따른 부담을 무릅쓰고 물러선 것은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의료 체계 위기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19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떠난 전공의들은 대부분 현장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증원 혜택을 본 의대 신입생마저 대거 수업에 불참하고 있다. 상급 종합병원들은 경영 위기를 겪고 있고 중증·응급 환자들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고 있다. 의료 파행 속에 지난해 2~7월 초과 사망 중증 환자가 3136명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의사들과 제대로 된 소통 없이 ‘대폭 증원’을 밀어붙였고 의료계는 국민들과 환자들을 볼모 삼아 ‘직역 이기주의’ 행태를 보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으로 남았다.
정부는 의료 파행과 개혁 후퇴에 대해 사과하고 누군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야의정 협의체를 시급히 가동해 무너진 의정 간 신뢰를 다시 쌓고 필수·지역 의료 강화, 전공의 처우 개선, 고난도 수술 수가 현실화 등을 위한 의료 개혁의 동력을 되살려야 한다. 의료인력수급추계위 등을 통해 의사 양성 규모를 정교하게 분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2027년 이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원점부터 재조정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 의사단체들도 그간 내세웠던 ‘내년 의대 증원 제로’ 주장을 관철한 만큼 전공의·의대생들의 조속한 복귀를 설득하고 의료 정상화를 위해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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