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4일 자정이 조금 지났을 무렵.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의 해제를 요구하기 위해 여야 국회의원들이 속속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나 본회의를 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는 우원식 국회의장은 쉽사리 개회 선언을 하지 않았다.
헬기를 타고 국회 경내로 넘어온 계엄군이 본회의장이 있는 본청까지 진입한 상황이었다. 우 의장의 개회 선언이 지연되자 일부 의원들은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우 의장은 “안건이 아직 올라오지 않았다”며 외려 의원들을 다독였다. 계엄 해제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오류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봤기 때문이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은 의원들이 의결 정족수를 채운 지 30여 분이 지난 뒤에야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절차에 준해 국회를 통과했다. 절차상의 허점을 남기지 않았기에 윤 대통령조차도 결국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 의장의 침착한 판단으로 탄핵을 놓고 국론이 분열된 지금도 계엄을 해제하던 상황에 대해서는 문제 삼는 이가 없다.
윤 대통령이 석방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즉시항고를 포기한 심우정 검찰총장을 직권남용 및 직무 유기 혐의로 공수처에 고발했다. 야권의 자진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탄핵까지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고 있는 윤 대통령 석방에 대한 분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민주당에 침착함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잇단 국무위원 탄핵 기각으로 상대에게 트집 잡힐 빌미를 줬다는 기억은 잊은 듯하다.
조기 대선 유무와 별개로 민주당은 언제든 집권이 가능한 정당이다. 지금의 양당제 체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당이 돼서도 감정만 앞세우다 침착함을 잃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의 예측 불가능성을 감안하면 민주당의 태도는 앞으로 더욱 무게감을 가져야 한다.
윤 대통령이 구치소를 나왔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든 국민이 비상계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생중계로 지켜봤다. 계엄 선포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법적 절차의 위법성을 적당히 넘어갈 수는 없다.
지금은 불안한 국민들을 다독여 탄핵 정국을 ‘문제 없이’ 마무리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다. 계엄군의 총구가 자신을 향하는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던 우 의장의 침착함을 복기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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