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집권 여당인 자유당이 9일(현지시간)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을 새 당대표로 마크 카니 전 캐나다중앙은행 총재를 선출했다. 현직 의원이 아닌 데다 정치권 경험도 거의 없는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전쟁에 맞설 ‘경제통’으로 평가받으며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원들의 선택을 받았다. 이 같은 기대를 의식한 듯 카니 신임 대표는 첫 연설에서 “트럼프가 성공하게 놔두지 않겠다”며 강경 대응 의지를 내비쳤다.
카니 대표는 이날 대표 선거에서 승리한 뒤 첫 연설에서 “트럼프는 부당한 관세를 부과하고, 캐나다의 가계와 노동자와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가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에 연이어 관세 압박을 가하는 것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조롱성 발언을 이어가면서 캐나다 내 반미 감정은 확산하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폭주를 향해 카니 대표는 “캐나다 정부는 미국이 우리에게 존중을 보여줄 때까지 우리의 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고, “캐나다는 절대로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카니 대표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는 물론, 외국인으로선 처음 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BOE) 총재를 지낸 인물로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에 대응한 경험이 있다. 정치 신인이나 다름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에 대응할 경제 전문가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이날 당원 투표에서 85.9%의 득표율을 얻었다.
집권 여당의 수장이 된 카니 대표는 의원내각제에 따라 이번 주 중 쥐스탱 트뤼도 현 총리의 뒤를 이어 24번째 캐나다 총리로 공식 선출돼 취임할 예정이다. 2015년 11월부터 9년 넘게 캐나다 총리직을 수행한 트뤼도 총리는 고물가와 주택가격 상승, 이민자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올 1월 “후임이 정해지는 대로 당 대표 및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신임 대표의 첫 시험대는 올 10월이 가기 전에 치러질 총선이 될 전망이다. 카니 대표가 대표 선거 기간 중 “선거 후 바로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강조해왔던 만큼 이르면 4월 말~5월 초 총선이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보수당이 40% 대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자유당 지지율은 기존 20% 대에서 최근 30% 대로 급상승했다.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다. 그의 경제 및 주권에 대한 위협이 캐나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면서 현 정부와 정부의 강경 대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여론의 기류가 ‘애국’으로 바뀌면서 보수당은 트뤼도 정부를 겨냥해 만들었던 ‘캐나다는 망가졌다(Canada is Broken)’라는 선거 슬로건을 ‘캐나다 우선(Canada First)’으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뤼크 튀르종 오타와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의 발언은 캐나다인들에게 중요했던 물가, 주택 가격 등 기존 이슈를 모두 밀어냈다”며 “미국발 위협이 결집현상(rallying around the flag)을 불러왔고, 누가 캐나다를 대표해 트럼프에 맞설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됐다”고 설명했다. 여론조사기관 앵거스 리드의 최근 조사 결과 응답자의 43%가 트럼프를 상대하기 적합한 인물로 카니를 선택한 반면, 보수당 대표인 피에르 폴리에브는 34%에 그쳤다. 총선이 임박한 상황에서 새 행정부의 대미(對美) 대응이 한층 강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일각에선 다른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인 감정이 얽혀있던 트뤼도 총리가 물러나면서 오히려 관세 협상이 이전보다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카니 대표는 이날 연설 전까지 트럼프의 관세 및 51번째 주 발언에 대한 대응 전략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삼가며 신중한 자세를 취해 왔다. 최근 캐나다 방송협회(CBC)와의 인터뷰에서도 트럼프에 대한 견해를 요청받고는 “트뤼도 총리의 협상에 상충되는 신호를 줄 수 있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이와 달리 대표 선거에서 경쟁했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1달러에 1달러씩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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