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집권 여당인 자유당이 9일(현지 시간) 쥐스탱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을 새 당 대표로 마크 카니(60) 전 캐나다중앙은행 총재를 선출했다. 이날 자유당 당원 15만 명 이상이 무기명투표를 한 결과 카니가 85.9%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캐나다에서는 집권당 대표가 총리를 겸한다. 카니 대표는 현직 의원이 아닌 데다 정치권 경험도 전무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관세 전쟁에 맞설 ‘경제통’으로 평가받으며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카니 대표는 이날 선거에서 승리한 뒤 가진 첫 연설에서 “트럼프는 부당한 관세를 부과하고, 캐나다의 가계와 노동자와 기업을 공격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가 성공하도록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캐나다산 제품에 연이어 관세 압박을 가하는 것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조롱성 발언을 이어가면서 캐나다 내 반미 감정은 확산하고 있다. 카니 대표는 트럼프의 이 같은 폭주를 겨냥해 “캐나다 정부는 미국이 우리에게 존중을 보여줄 때까지 우리의 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히며 “캐나다는 절대로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인 카니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맡아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됐다. 이후 2013년 영국 정부가 그에게 전임자의 3배의 연봉을 제시하면서 영국중앙은행 총재직을 요청했다. 그는 7년간 첫 외국인 출신으로 영국중앙은행 총재를 지내며 영국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 전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에 적절히 대응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집권 여당의 수장이 된 카니 대표는 의원내각제에 따라 이번 주 중 트뤼도 총리의 뒤를 이어 24번째 캐나다 총리로 공식 선출돼 취임할 예정이다. 2015년 11월부터 9년 넘게 캐나다 총리직을 수행한 트뤼도 총리는 고물가와 주택 가격 상승, 이민자 문제 등으로 지지율이 하락하자 올 1월 “후임이 정해지는 대로 당 대표 및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신임 대표의 첫 시험대는 연내 치러질 총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카니 대표가 대표 선거 기간 중 “선거 후 바로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던 만큼 당초 10월로 예정된 총선은 이르면 4월 말~5월 초 치러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주요 여론조사에서 야당인 보수당이 40%대의 지지율로 선두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자유당 지지율은 기존 20% 대에서 최근 30%대로 급상승했다. 일등공신은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의 경제 및 주권에 대한 위협이 캐나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하면서 현 정부와 정부의 강경 대응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뤼크 튀르종 오타와대 정치학 교수는 “트럼프의 발언은 캐나다인들에게 중요했던 물가, 주택 가격 등 기존 이슈를 모두 밀어냈다”며 “미국발 위협이 결집 현상을 불러왔고 누가 캐나다를 대표해 트럼프에게 맞설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 질문이 됐다”고 짚었다. 여론조사 기관 앵거스리드의 최근 조사 결과 응답자의 43%가 트럼프를 상대하기 적합한 인물로 카니를 선택한 반면 보수당 대표인 피에르 폴리에브는 34%에 그쳤다.
새 행정부의 대미(對美) 대응이 강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전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과 개인적인 감정이 얽혀 있던 트뤼도 총리가 물러나면서 오히려 관세 협상이 유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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