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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옥 칼럼] 소비·과학기술로 무장한 중국의 미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소비 늘리고 올 R&D 80조원 투자

美 견제 속 성장 방향 제대로 짚어

한국만 정치에 발목 경쟁력 상실 우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학과 교수




중국이 5~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연례 회의를 개최해 올해 국정운영의 방향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2기 정부 등장 이후 미국의 거친 공세 속에서 중국의 대응 방향은 세계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리창 국무원 총리는 ‘정부 업무 보고’를 통해 10대 중점 사업을 제시했는데 이 중에서도 ‘소비’와 ‘과학기술’에 초점을 맞췄다. 실제로 정부 업무 보고에서 사용한 소비와 과학기술이라는 단어는 지난해 각각 21회와 6회에서 올해 31회와 12회로 늘었다. 이를 위해 올해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목표를 5% 내외로 설정했고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적자율을 GDP 대비 3%에서 4%로 올려잡았다.

우선 소비 확대다. 중국 경제가 부채에 의지해 성장하는 것은 이미 한계에 직면했다. 미국발 보호주의 속 대외 수출 여건이 악화된 상황에서 민생 개선, 수요 확장, 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해졌다. 구체적으로는 소비자물가지수(CPI) 목표를 24년 만에 처음으로 3% 미만인 2% 내외로 제시하면서 디플레이션을 막기로 했다. 또 올해도 1300만 대 이상을 출시할 예정인 신에너지 차량을 비롯해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꾸는 ‘이구환신(以舊換新)’ 사업을 벌여 소비를 늘리기로 했다. 이를 위해 3000억 위안(55조 원) 규모의 초장기 특별 국채를 발행한다.

또 하나는 과학기술이다.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지출 예산은 전년 대비 10% 증가한 3981억 위안(약 80조 원)을 편성했다. 여기에 지방정부와 별도 예산을 포함하면 총R&D 투자는 8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정부 업무 보고에서 밝힌 대로 실생활에 깊이 침투한 체화형 인공지능(AI), 6세대 이동통신, 휴머노이드 로봇, AI형 휴대폰, 지속적 고성장을 추구하는 가젤기업(Gazelles Company) 육성 방안을 제시했다. 중국은 향후 미중 간 게임 체인저가 이곳에서 나타날 것으로 보고 후발 산업은 필사적으로 추격하고 선도 산업은 초격차를 유지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예방 전쟁의 차원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고삐를 더욱 죌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이미 전인대 기간에 중국 상품에 2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고사양 반도체를 비롯해 미래 산업에 필요한 장비와 소재 등에 대한 수출통제를 강화해 중국의 혁신 사다리를 걷어찼다. 또 멕시코와 동남아를 통해 미국으로 가는 중국 상품의 우회로도 촘촘하게 막을 것이다. 중국도 여기서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생각 때문에 핵심 광물의 대미 수출 제한,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관세 부과, 농산물에 대한 표적 제재 등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프리미엄 및 럭셔리 시장, 로봇을 통한 스마트 제조공장 건설, 안정적인 홍색 공급망 구축 등 ‘강요한 자립화’에 대비해 시장·공장·공급망 연계를 다시 설계하고 있다.

이번 전인대의 중국 국정 목표에 대해 현실보다 기대를 반영했다는 외부의 시각이 있다. 즉 부동산 거품의 지속, 시장 기대치를 밑돈 채무 관리 대책, 노동인구의 감소, 경직된 정치 체제에서 오는 기업 활력의 저하, 복합지정학 리스크, 총요소생산성(TFP)의 지속적 하락 등으로 GDP 성장률 5%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다양한 위기가 동시에 병목 구간을 통과할 경우 이를 감당할 중국 거버넌스 능력에 대한 불신도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어떤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지, 어디에 자원과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지, ‘지금 여기서’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은 제대로 짚었다.

반면 우리 사회는 과거의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 혐오가 난무하는 광장의 정치는 어렵게 쌓았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고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동안 반도체와 자동차 등 초격차를 보였던 우리 산업은 빠르게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로봇 공정이 이미 노동시장을 대체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곧 중국 스마트 제조의 하청 기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thinking the unthinkable)’ 시대에 고작 30조 원의 R&D 예산으로 AI 선도 국가가 되겠다는 우리의 포부는 너무 낭만적인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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