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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꽃싸움

한용운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얏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겄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 맞추겄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가는데 당신은 옛 맹서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한평생 당신을 기다리던 시인이 떠나고 이듬해 해방이 왔지요. 강산의 진달래는 이제 제 나라 백성을 위해 붉고, 우리는 부푼 21세기를 살고 있는데 왜 이 꽃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처럼 보일까요. 당신은 우리가 그리워하면서도 아직 오지 않은 어떤 분이기 때문이겠지요. 올봄에는 시인을 대신하여 진달래 꽃수염 쥐고 당신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사정없이 붉은 꽃수염으로 이기고 싶습니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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