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철강·알루미늄에 고율 관세를 집행하며 글로벌 무역전쟁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이 같은 일방적 조치에 주요국들이 보복에 나서면서 통상마찰 격화가 예고됐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정부는 지난달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포고문에 따라 수입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파생 제품에 이날 오전 12시1분(한국시간 12일 오후 1시1분)부터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알루미늄과 파생 제품 약 1500억 달러(218조 원) 상당이 이번 관세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미국 정부는 관세 적용 대상을 철강과 알루미늄으로 만든 259개 파생 제품으로 확대했다. 추가 공고 때까지 유예가 발표됐던 범퍼, 차체, 서스펜션 등 자동차 부품과 가전 부품, 항공기 부품 등 87개 파생제품에도 철강·알루미늄 함량 가치를 기준으로 같은 세율의 관세가 부과됐다.
미국 상무부는 파생제품 259개 가운데 87개에 대해서는 추후 공지때까지 관세 부과를 유예하기로 했지만, 이번 관세 발효 직전 미국 관세국경보호청(CBP)은 이들에 대해서도 즉시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최종 발표했다.
그동안 각국과의 합의에 따라 적용해온 예외와 관세 면제도 전부 파기됐다. 한국이 2018년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철강에 적용 받았던 기존 면세 쿼터(연간 263만 톤)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미국이 무역흑자를 보고 있는 호주산에 대해서는 면제를 고려하겠다고 밝혔지만 결국 호주산에도 동일하게 부과된 데서 보듯 미국의 모든 교역 상대국에 이번 관세는 예외없이 적용됐다.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발효되자 유럽연합(EU), 중국, 캐나다, 영국 등 미국의 주요 무역 상대국들은 반발하며 즉각 보복을 예고했다.
EU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신속하고 비례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며 미국의 조치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EU는 두 단계에 거쳐 총 260억 유로(약 41조 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EU는 보복 관세를 즉각 시행하지 않고 4월로 예고해 협상의 문을 열어 뒀다.
중국도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하겠다며 보복을 예고하고 나섰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행위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규칙에 기반을 둔 다자간 무역체제를 심각하게 훼손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은 항상 보호주의에는 퇴로가 없으며, 무역전쟁과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는 국제사회의 보편적이고 공통된 인식”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이번 관세 조치에 유감을 표명하고 미국과 긴밀한 의사소통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제외를 요청했음에도 일본이 제외되지 않는 형태로 추가 관세 부과가 시작된 것은 유감”이라며 “일본과 미국 경제 관계, 세계 경제, 다각적인 무역체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어 일본 철강·알루미늄 제품은 미국 안보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대체가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고 “미국 산업과 고용에도 크게 공헌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캐나다와 영국도 보복 가능성을 시사했다. 조너선 윌킨슨 캐나다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응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조너선 레이놀즈 영국 상무장관은 “실망스럽다”며 국가 이익을 위한 대응을 위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관세 집행을 두고 미국 안팎에서는 무역전쟁 격화 우려와 함께 미국 경제가 오히려 타격 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번 조처로 해외 철강 제품과 경쟁해온 미국 내 철강업체들은 반색하지만 미국 내 자동차 제조업체와 태양광 패널 등의 제조 비용이 상승해 미국 경제 성장세가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원료로 쓰는 제조업체들은 관세 때문에 가격이 상승하면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광범위한 제조업계가 피해를 입게 되고, 미국 경제 전반에 충격이 퍼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제조업 부흥 계획이 오히려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관세가 트럼프 대통령의 중대 국정 과제인 인플레이션 완화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특히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적용되는 파생제품 중 자동차 부품이 다수 포함돼 있어 이번 관세가 자동차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면 인플레이션 압박을 키우고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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