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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송현] 스마트환자가 온다

허두영 한국과학언론인회장

정보 파악 스스로 건강 챙기는 집단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 등장은 필연

생산자·정책 개선 이끄는 역할 해야





정보통신기술(ICT)이 점점 똑똑해지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각종 기기와 사물에 ‘스마트(smart)’라는 수식어가 접두사처럼 쓰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시작으로 스마트워치·스마트TV·스마트홈·스마트카·스마트공장·스마트시티 같은 용어가 잇달아 등장했다. 보건의료 분야도 디지털 전환의 패러다임을 타고 디지털 헬스케어가 확산되면서 스마트약물·스마트병원·스마트진료 같은 장밋빛 미래 기술이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인공지능(AI)과 로봇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스마트병상과 스마트수술 같은 용어도 곧 머리를 내밀 것이다.

문득 스마트의 주체는 왜 기술이나 제품뿐일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기술이나 제품이 스마트해지면 사람은 따라서 저절로 스마트해지는 걸까. 정부가 일찌감치 환자 중심 의료를 내걸었지만 스마트를 앞세운 연구개발(R&D) 정책의 대상은 기술이지 환자는 아니었다. 환자는 병원에 맡기는 치료의 대상이지 치료의 주체가 되지는 못하는 걸까?

의료기술이 발달하면 의료인 집단만 진화하지 않는다. 환자 집단도 함께 진화한다. 1990년대 중반에 ‘e환자(e-patient)’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당시는 e메일(e-mail)을 시작으로 e북·e러닝·e커머스처럼 인터넷을 뜻하는 접두어 ‘e’가 유행하던 시기였다. e환자란 인터넷과 디지털 도구를 써서 모은 건강 정보를 토대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적극적인 환자를 의미했다.



AI 기술을 타고 접두사 스마트가 우후죽순 돋아나는 지금 ‘스마트환자(smart patient)’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에 힘입어 자신과 가족의 건강 정보를 파악하고 의료진과 함께 치료 계획을 세우면서 스스로 건강관리를 주도하는 집단이다.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생산자이면서 소비자인 ‘프로슈머(prosumer)’의 출현을 예고한 것처럼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에 스마트환자의 등장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스마트환자는 근거 높은 정보와 데이터로 자신과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건강 관리자’여야 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활용하면서 다른 환자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생산자에게 개선 사항을 전해주며, 정부에 정책 개선을 요구하는 ‘건강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필요하다. 수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적극적인 사용자로서 임상 시험이나 리빙랩(Living Lab) 같은 채널을 통해 의료 서비스에서 사용자 혁신을 주도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미국의 환우회 ‘나이트스카우트(NightScout)’는 1형당뇨 자녀가 겪는 불편과 고통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연속혈당측정기(CGM) 개발을 이끌었다. 한국1형당뇨환우회는 연속혈당측정기의 수입을 막는 정부의 규제를 풀어내고 제품 개선에 참여했다. 스스로 배우고 교육하고 행동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스마트환자 집단이다.

스마트환자의 역량은 리터러시(literacy·이해력)에 크게 달려 있다. 건강 정보를 이해하는 리터러시는 물론 디지털을 활용하는 리터러시, 정보를 다루는 리터러시, 미디어로 확산하는 리터러시를 배워야 한다. 어쩌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환자 창업’을 향한 창업 리터러시까지 갖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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