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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가짜뉴스와 공론장의 비극

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1938년 11월 9일 심야에서 새벽으로 넘어가던 그 시각, 훗날 ‘수정의 밤’이라고 불린 폭동과 소요가 독일 곳곳에서 벌어졌다. 흥분한 군중이 폭력을 동원해 도심을 휩쓸면서 유대인 상가, 예배당, 가택, 학교, 병원 등이 파괴되고 불탔다. 비극의 참상을 부추긴 게 정치인인 점도 특기할 만하다. 요제프 괴벨스 등이 유대인을 겨냥한 당대의 음모론에 불을 댕겼고 ‘내부의 적’을 용인할 수 없다는 대중의 분노와 증오를 격발시켰다.

기시감이 느껴진다. 폭력의 규모에서 차이는 있지만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세력의 부상과 활동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올 1월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유린한 일부 세력이 이번엔 공공연히 헌법재판소를 위협 중이다. 난동의 기저에는 허무맹랑한 음모론과 허위 조작 정보가 도사리고 있으며 증오감을 부추기고 그들의 에너지를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일부 정치인이 자리한다. 그 정점에 중요한 정치인들의 그림자가 엿보인다. 부끄러운 대목이다.

우리의 교양을 믿고 자정 작용을 기대했으나 지금은 어떤 특이점을 넘어섰다는 판단이다. 표현의 자유는 부인할 수 없는 헌법적 가치이지만 표현의 자유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해체되는 상황이 온다면 어찌해야 할까.

공론장을 훼손하고 공동체를 집어삼키는 표현의 자유도 옹호해야 할까. 헌정 질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음모론과 허위 조작 정보를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무한정 허용해야 할까.



각종 음모론과 허위 조작 정보에 점령당한 우리의 공론장이 무참히 부서지고 공동체가 극단 세력에 점점 더 물들고 있다. 그것의 매개가 되는 플랫폼에 대한 규율과 규제는 당연히 필요하다. 요컨대 반사회적 유튜브 채널의 계정은 차단하고 대중의 분노를 격발시켜 갈취한 수익은 환수해야 마땅하다. 그렇게 되도록 플랫폼에 강력히 책임을 지우는 게 필요하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글로벌 플랫폼 업체를 다잡을 힘이 없고 정치적으로 변질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택적 심의’로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플랫폼 규율만으로는 궁극적 해답을 찾을 수 없다. 설사 플랫폼에 책임을 물린다 한들 헌법에서 규정한 표현의 자유와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수정의 밤’ 이후 전범국의 길을 걸으며 역사의 오점을 남긴 독일은 참고할 사례다. 전후 독일은 연방헌법수호청을 두고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를 위협하는 극단주의 세력을 감시한다. 감시 대상은 극단주의, 테러리즘, 국가 부정, 사이버 안보 관련 등이다. 다시는 나치 같은 극우 세력이 공동체를 해체한 불행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론 군부 독재를 경험한 한국이 이를 곧장 준용하기에는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으니 논의라도 시작해 물꼬를 터야 한다.

각종 허위 조작 정보를 감시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위상도 새로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요컨대 헌법재판소 같은 헌법상 독립 기구로 만드는 방법이다. 그것이 기관의 완벽한 독립성을 가져올 수는 없을지라도 지금 같은 정치적 외풍에서는 상대적으로 분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허위 조작 정보가 현실의 폭력으로 이어지는 지금 상황은 대단히 위험하다. 방어적 민주주의와 관련해 유명한 표현을 인용한다. 자유의 적에게 줄 자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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