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 가구 대단지를 조성하는 서울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상가 미분양에 골머리를 앓으며 '통매각' 카드를 잇달아 꺼내들고 있다. 강남권조차 상가 공실이 치솟는 등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통매각 도미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해 최대어로 꼽히는 '잠실 르엘'(미성크로바 재건축) 조합이 상가 124호실 중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점포를 일괄 매각하기 위한 입찰공고를 냈다. 연말 1865가구가 입주하는 프리미엄 단지임에도 상가 분위기는 냉랭하다.
'이문아이파크자이'(이문3재정비촉진구역) 조합도 이달 초까지 상가 222개 통매각을 위한 업체 선정 입찰을 진행했다. 이 단지는 오는 11월 4300가구가 입주 예정이다.
이미 입주를 눈앞에 둔 단지들도 통매각에 나서고 있다. 5월 입주 예정인 '서울대벤처타운역 푸르지오'(신림3구역)는 지난해 두 차례 시도 끝에 대행업체를 선정했다. 현재 1·2층 17개 상가 통매각이 진행 중인데, 매각 가격은 3.3㎡당 1200만원으로 다른 단지의 3분의 1 수준이다.
6월 3300가구 입주 예정인 '메이플자이'(신반포4지구) 조합은 상가 213개 점포 중 59개를 일괄 매각하려다 1차 입찰에서 유찰되자 기준금액을 10% 낮추고 2차 입찰을 진행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상가 공실이 급증하면서 조합 입장에서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통매각으로 리스크를 전가하는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실률 증가와 거래 감소가 이 같은 통매각 행렬의 원인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집합상가 공실률은 2023년 1분기 8.01%에서 2024년 2분기 9.51%까지 상승했다. 올해 1월 서울 업무·상업용 건물 총 거래액은 6604억원으로 전월(1조5467억원) 대비 57.3% 급감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강남권 고가 아파트 단지에서도 상가 공실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반포 원베일리, 개포자이 프레지던스 등에서는 상가 1층 분양가가 3.3㎡당 1억원에 달하면서 미분양이 속출했고, 송파구 헬리오시티는 7년째 상가 미분양으로 고심 중이다.
입주가 오래된 단지도 예외가 아니다. 강동구 고덕 아르테온은 준공 후 5년이 지났지만 학원 건물이 여전히 조합 자산으로 남아있다. 통매각 입찰이 4번 유찰되며 가격은 127억3100만원에서 83억5290만원까지 34%나 하락했다.
주택 시장 침체도 상가 분양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이문아이파크자이는 지난해 청약에서 일반분양 1467가구 중 118가구가 미분양됐고, 서울대벤처타운역 푸르지오 전용 84㎡ 분양권은 분양가보다 2000만원 저렴하게 거래되고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면적당 분양가로 따지면 상가가 아파트보다 비싸고 대출 조건도 주택에 비해 좋지 않기 때문에 상가 공실이 늘고 있다"며 "주택 시장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상가 통매각 도미노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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