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리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 에너지와 인프라스트럭처 분야에 대해 30일간 휴전하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미국이 애초 요구한 전면적인 휴전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쟁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는 원칙적으로 ‘부분 휴전안’에 동의하면서 전쟁 발발 3년 만에 평화를 향한 가시적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18일(현지 시간) AP통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이날 두 정상이 전화통화를 통해 이같은 내용의 합의를 이뤘다고 밝혔다. 크렘린궁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30일간 에너지 인프라 시설에 대한 공격을 서로 중단할 것을 제안했고, 푸틴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반응하며 즉시 군에 해당 명령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백악관은 이같은 의견 합의에 대해 “평화를 향한 움직임의 첫걸음”이라고 표현했다.
두 정상은 이날 약 1시간 30분 간 전화 통화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의견을 나눴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의 통화는 지난달 12일에 이어 1개월여 만에 이뤄졌다. 애초 미국 측이 원한 안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모든 전투를 30일 동안 중단하는 방안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열린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고위급 회담에서 이같은 ‘30일 전면 휴전안’을 러시아가 수용할 것을 촉구한 바 있다. 다만 이는 러시아측이 거부했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30일 전면 휴전안에 대해 푸틴 대통령은 휴전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 우크라이나가 그 사이 재무장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우려하며 문제를 지적했다. 결국 러시아가 트럼프 대통령의 당초 제안인 30일 전면 휴전을 거부했으나 수정 제안은 수용했다는 설명이다.
백악관은 이와 관련 추후 흑해 해상의 휴전과 전면적 휴전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한 협상을 “즉시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크렘린은 푸틴 대통령이 합의를 위해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 군사 및 정보 지원을 중단할 것도 촉구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취재진에게 “에너지 및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자는 제안을 찬성한다”고 밝힌 뒤 “러시아가 (미·러의 휴전 제안을) 지킨다면 우리도 그럴 것”이라며 “미국은 보증인이 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세부 사항을 듣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하기를 원한다면서 “세부 사항을 받은 뒤 우리는 우리의 답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평화 협상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고위 관리는 에너지 인프라 휴전과 관련 “궁극적으로 푸틴이 전쟁을 원하기 때문에 유일한 현실적인 제안”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말했다.
유럽 주요국도 평화로 가는 첫걸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날 베를린을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동 기자회견에서 “목표는 우크라이나의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라며 “부분 휴전이 여기에 중요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협상 참여 없이는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이날 통화에서 미·러 관계 개선에 대해서도 뜻을 같이했다. 백악관은 “두 정상이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개선된 미래에 큰 이점이 있다는 데 동의했다"며 “평화가 달성됐을 때 막대한 경제적 합의와 지정학적 안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오는 19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175명씩의 포로를 교환할 예정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알렸다. 또 크렘린궁은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와 미국 아이스하키 선수 간의 경기를 미국과 러시아에서 개최하자는 푸틴 대통령의 제안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은 이와 함께 중동의 충돌 방지와 잠재적 협력에 대해서도 논의했으며, 이란이 이스라엘을 파괴하려는 입장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견해에 동의했다고 백악관은 소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푸틴과의 회담에 대해 “매우 좋고 생산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평화 협정의 많은 요소들의 논의 됐다”며 “그 절차들이 이제 실제로 가동되고 있고 우리는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 일을 마무리 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은 통화 전까지 미국이 전면 휴전을 주장했다는 점을 들어 “이번 트럼프와 푸틴의 통화는 실패”라고 혹평했다. 이날 두 정상의 통화 내용과 관련해서도 ‘중대한 불일치’가 있을 가능성을 지적했다. 통신에 따르면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에너지 및 인프라” 휴전에 동의했다고 밝히며 다리나 도로 같은 인프라 구조물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러시아 측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을 일시 중단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미국외교협회의 유럽담당펠로우인 리아나 픽스는 “러시아는 시간을 벌고 있다”며 “이번 통화는 (휴전이 아닌) 미국과 러시아 관계 정상화에 관한 것이며, 러시아 측은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우크라이나 문제 해결의 중요성은 격하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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