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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진영 대결의 볼모된 헌법

이승배 정치부 기자


“이념따라 헌법재판관을 구분한다? 얼마 전까지 금기시된 일이었죠.”

한 여권 관계자는 “지난 석 달간 마치 ‘헌법’이 아스팔트 위를 활보하는 것 같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파면을 주장하는 이들도, 직무 복귀를 외치는 이들도 하나같이 헌법을 거론했다. 광화문에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가 적힌 팻말을 들고 국가원수의 탄핵을 주장했고, 한남동에선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권을 부여한 헌법 제77조를 근거 삼아 계엄군의 국회 진입을 정당화했다.

빈번해진 헌법의 출몰에 우려가 앞서는 건 헌법마저 정치 대결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생각 때문이다. 갈등 조율 능력이 결여된 여야가 만든 ‘정치의 사법화’로 사법부 위신이 추락한 데 이어 이젠 대한민국 법치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마저 진영 대결의 전장이 돼가고 있다. ‘헌법재판소를 때려 부숴야 한다’는 몰지각한 발언이 여당 국회의원 입에서 나오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헌정 질서 최후의 보루인 헌법마저 적대적 대결 정치의 도구가 돼가는 현실에서 이뤄지는 개헌 논의는 공허하기 그지없다. 바뀐 권력 구조가 갈등·분열 지향적인 이 끈질긴 현실 정치 문화를 압도하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서다. 대통령의 권한을 국무총리와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하면 의회와 충돌 속에서도 그나마 안정됐던 행정부마저 위태로워지는 건 아닌지. 4년 중임제는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 남용 강화와 대결 정치 심화라는 역기능만 초래하지 않으리라 누가 담보할 수 있을까.

헌법학자 양건 전 감사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을 다룬 저서 ‘헌법의 이름’에서 “새로운 헌법 질서는 꼭 조문 변경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라며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질적 헌법 질서의 새 정립이며 그 방향에서 꾸준한 실행”이라고 말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 정치 풍토를 구축하지 않는 한 어떤 제도도 순기능이 발휘되긴 힘들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임박했다. 이번 선고가 한쪽 진영의 승리나 패배로 끝나선 안 된다. 극심한 혼란을 초래한 정치·사회 시스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지점에서 한국 정치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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