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관세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기 보다 한 차례의 가격 상승에 그칠 것으로 본다는 전망을 제시했다. 관세가 물가 충격 수준으로 가지는 않는다는 관측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같은 시각이다.
파월 의장은 아울러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지만 경제가 침체 우려를 하기는 이르다는 시각도 내비쳤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한동안 기준 금리를 동결한 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파월 의장은 19일(현지 시간)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조치 없이 빠르게 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일시적 현상이라면 때론 그런 인플레이션을 그냥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며 “관세 인플레이션이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발언은 연준이 이날 금리를 동결하고 연내 금리 인하 횟수도 2회로 유지한 데 대해 설명하면서 나왔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 통화 정책은) 관세 인플레이션이 비교적 빠르게 해소되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장기적인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잘 고정되어 있는지도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이날 기준금리를 현행 4.25~4.5%로 유지했다. 별도로 공개한 분기별 경제 전망에서 연말 기준금리 전망도 3.9%로 바꾸지 않았다. 연내 0.25%포인트 씩 두 차례 인하한다는 전망이다. 세부 전망은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 속 물가 상승)의 방향으로 기울어졌다.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은 기존 2.1%에서 1.7%로 낮춘 반면 인플레이션 전망치는 높엿다. 연준의 정책 기준이 되는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 상승률의 올해말 전망치는 지난해 12월 2.5%에서 2.8%로 높아졌다. 올 1월 근원 PCE 상승률이 2.6% 였던 점을 고려하면 올 연말까지 물가 상승세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파월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물가에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은 명확하다고 봤다. 그는 “모든 예측가들은 관세 인플레이션을 예상한다. 여기에 예외가 있다는 점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올 들어 상품 물가가 상승했다는 점을 지목하며 이미 관세의 물가 영향이 시작될 가능성도 언급했다. 파월 의장은 “그것(관세)와 관련이 있을 것”이라며 “아마도 관세가 부과되기 전에 사람들이 그 물건들을 사재기 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 등 정책 영향이 경제를 충격으로 몰고가는 단계를 논의할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금리가 치솟고 성장이 곤두박질 쳤던 1970년 대 식의 통화정책을 감수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우리는 2.5%의 인플레이션에 2%의 성장, 4%의 실업률 상황에 있기 때문에 70년대의 재현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며 “인플레이션이 관세와 관련해 약간의 상승이 있지만 여전히 2%대이기 때문에 그 때와 비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파월 의장은 경제 불안감과 실제 경제의 둔화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비자와 기업 대상 설문을 기반으로 하는 지표(소프트데이터)의 경우 불안감이 나타나지만 측정 기관이 직접 측정한 경제 지표(하드 데이터)에서 드러나는 경제는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다. 파월 의장은 “소프트 데이터가 악화됐다는 점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하드데이터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말했다. 파월은 또 침체 위기와 관련 “매우 어려운 상황 이지만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은 앞으로 통화 정책에 대해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상황을 지켜본다(wait and see)는 기존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다만 그는 “우리는 금리를 내릴 수도 있고, 유지할 수도 있는 지점에 와있다”며 추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대목에서 “파월이 금리 인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연준의 전체적인 정책 기조는 긴축 완화 경로에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연준의 발표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파월 의장도 성장과 물가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면서 금융시장은 상승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383.32포인트(+0.92%) 상승한 4만9164.63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60.63포인트(+1.08%) 오른 5675.29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종합지수는 246.67포인트(+1.41%) 상승한 1만7750.79에 장을 마감했다.
한편 연준은 이날 양적긴축(QT) 속도를 늦추기로 발표했다. 현재 월 250억 달러 규모로 줄이고 있는 미국 국채 월별 상한 한도를 50억 달러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해 5월 국채 상환한도를 월 600억 달러에서 250억 달러로 줄인 이후 10개월 만에 추가 속도 감축이다. 연준은 국채 외에 모기지담보증권(MBS)의 상환 규모는 기존대로 월 350억 달러를 유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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