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마치고 내놓은 정책 결정문에서는 “물가와 고용 위험이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표현이 삭제됐다. 대신 “경제 전망을 둘러싼 불확실성(uncertainty)이 증가했다”는 문구가 들어갔다. 이후 이어진 50분간의 기자회견에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불확실성’을 언급한 횟수는 16차례에 이르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두 번째인 이번 FOMC의 키워드는 ‘불확실성’이었다. 파월 의장은 “무역 정책과 그에 따른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다”며 “더 명확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적절한 시점”이라고 금리 동결의 배경을 밝혔다.
연준의 분기별 경제 전망(SEP)은 불확실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올해부터 3년간 1%대로 둔화할 것으로 봤다. 반면 근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의 올해 말 전망치는 기존 2.5%에서 2.8%로 높였다. 올 1월 근원 PCE 상승률이 2.6%였던 점을 고려하면 인플레이션 오름세가 커진다는 관측이다. 파월 의장은 “경제 전망에서 올해 인플레이션 둔화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며 “관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파월 의장은 다만 “관세의 물가 영향은 일시적(transitory)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조치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일시적 현상이라면 그냥 살펴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며 “관세 인플레이션이 이런 경우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이런 시각은 연준이 이번에 금리를 올리지 않은 배경을 뒷받침한다.
다만 점도표에서는 FOMC 위원들의 분위기가 매파적으로 기울었다. 올해 말 기준 금리 전망의 중간값은 3.9%로 3개월 전과 같았지만 금리 동결을 주장하는 위원은 직전 1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반대로 네 차례 이상 내려야 한다고 보는 위원 수는 3개월 전 2명이었지만 이번에는 한 명도 없었다. 연준 내부에서 성장 둔화보다 인플레이션 촉발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해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금리가 치솟고 성장이 곤두박질쳤던 1970년대와 같은 경제 충격 상황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우리는 2.5%의 인플레이션에 2%의 성장, 4%의 실업률 상황에 있기 때문에 1970년대 경제 상황이 재연된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침체 위기설과 관련해서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 단계에 이르지 않았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그러면서 “우리는 금리를 내릴 수도 있고, 유지할 수도 있는 지점에 와 있다”며 전체적인 정책 기조는 여전히 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나타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이날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연준은 금리를 내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며 “(연준은) 옳은 일을 하라”고 금리 인하를 압박했다. 지난해 9월 ‘빅컷(0.5%포인트 금리 인하)’을 시작으로 11월과 12월 0.25%포인트씩 연속해서 기준금리를 내리던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인 올 1월부터는 동결 행보를 보이자 직접적으로 불만을 드러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준이 1월 기준금리를 동결했을 때도 “연준은 자신들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으로 만든 문제를 멈추게 하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파월 의장이 경제 불확실성 속에서도 비관론을 차단하고 나서자 뉴욕 증시는 상승했다. 이날 나스닥종합지수가 1.41% 오르는 등 뉴욕증시 3대 지수가 모두 상승 마감했다. 연준이 미국 재무부의 부채 한도 조절 업무와 관련해 금융 양적긴축(QT) 속도를 늦춰 간접적으로 인하 기조에 힘을 보탰다는 점도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다만 연준의 금리 인하 속도는 생각보다 더딜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네이션와이드의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캐시 보스트얀치치는 “관세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연준은 시장이 예상하는 것보다 더 오랫동안 관망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연준이 정책 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지난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도 22만3000건으로 직전 주(22만 건)보다 소폭 늘며 3주만에 상승 반전했다. 노동시장이 악화하면 경기 침체 신호로 읽힌다.
연준의 금리 동결 결정을 지켜 본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도 기준금리를 연 4.50%로 동결했다. 자국 경기 회복을 위해 지난달 3개월만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던 영란은행은 당분간 시장 안정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