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한국 정부에 대한 통상 압력을 높여가는 가운데 미국 빅테크들의 한국 정부 대상 소송이 최근 크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구글·애플 등 빅테크의 독과점을 규제하는 ‘플랫폼법’ 등을 대표적인 비관세장벽으로 지적하는 상황에서 향후 한국 정부를 대상으로 하는 소송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법무부 등 정부 예산과 조직은 그대로라서 이른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방송통신위원회는 구글·애플에 대한 인앱결제강제금지법(개정 전기통신사업법) 위반과 관련해 과징금 처분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위원회 의결만 남겨둔 상황이며, 구글과 애플의 의견 청취 절차를 마치고 의결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통위는 앞서 2023년 10월 구글과 애플에 각각 475억 원, 205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시정 조치안을 발표했지만 실제 처분은 내리지 않았다. 방통위는 앱마켓 사업자인 구글과 애플이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특정 결제 방식을 강제하고 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시켰다면서 전기통신사업법상 금지 행위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900억 원에 가까운 과징금 처분이 나면 구글과 애플은 곧바로 불복 절차에 들어갈 것으로 관측된다. 실제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제재에 대부분 불복해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1000억 원대 과징금 부과에 대해 지난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하기도 했다.
2022년 9월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개인정보를 이용자 동의 없이 수집했다며 구글과 메타에 각각 692억 원, 308억 원 등 총 100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한 바 있다. 양 사는 이에 불복해 행정법원에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올 1월 패소 판결을 받고 항소한 상황이다.
넷플릭스는 과세 당국과 소송 중이다. 넷플릭스는 2021년 과세 당국이 세무조사를 실시해 추징한 세액이 부당하다며 조세 불복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조세심판원은 국세청이 과세한 780억 원에 대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미국 빅테크들의 소송이 이같이 빗발치고 있고 트럼프 정부가 이들 기업에 대한 규제가 부당하다며 향후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이 높아져가지만 한국 정부의 대응력은 현실적으로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현재 글로벌 빅테크 관련 소송은 ‘정부의 로펌’으로 불리는 법무부 국제법무지원과가 담당 중이다. 이 밖에 국제법무과는 △외국법제 분석 △해외 증거 수집 △변론 등 정부의 소송 대응 업무를 하고 있다.
문제는 빅테크의 불복 소송에 대응하는 사건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반면 소속 인원은 9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조직 구성을 보면 현재 파견 검사 3명을 비롯해 법무관·사무관이 각각 3명 있다. 국제법무지원과는 정부나 공기업 등과 관련한 국제 소송을 수행하고 타 부처에 대한 법률 조언도 담당한다.
법무부와 함께 일할 로펌을 구하기도 어렵다. 현재 정부와 소송을 하는 빅테크들은 국내 대형 로펌이 대리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상충 문제로 중소 로펌을 쓰거나 직접 법원에 나가 정부를 대리할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2일부터 한국에도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면서 정부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 정부와 대거 소송을 진행 중인 빅테크에 대한 과도한 규제 및 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는 만큼 향후 양국 경제 현안의 ‘뜨거운 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구글·메타를 상대로 1000억 원 상당의 과징금 승소를 이끌어낸 개보위 등도 법률 비용이 3000만 원 수준에 그쳐 법무부에서 인력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특히 대형 로펌들은 빅테크들을 다수 대리하고 있기 때문에 소형 로펌만으로는 실제 대응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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