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71) 튀르키예 대통령이 정적을 제거하며 종신집권 추진을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수개월간 야권을 탄압해 온 가운데 유력 대권주자 이마모을루 이스탄불 시장을 전격 체포하며 정적 제거에 나선 것으로 튀르키예 국민들의 반발은 점점 거세질 전망이다.
튀르키예 경찰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에크렘 이마모을루(54) 이스탄불 시장을 뇌물수수, 테러단체 연루 등 혐의로 체포해 사법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이마모을루는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 소속으로, 오는 2028년 대선에서 에르도안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꼽혀왔다.
체포 직전 그는 대학 학위가 취소되며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했고, 이어 형사처벌 가능성까지 제기되자 정치 보복이라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야권 내부에서는 이마모을루가 오는 23일 치러질 예정이던 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을 들어 이번 체포가 노골적인 정치공작이라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처럼 이스탄불 시장을 거치며 정치적 입지를 다져왔다. 최근에는 여당 지지층 일부까지 흡수하며 폭발적인 대중 인기를 끌었다. 미국 근동정책연구소의 소너 캡타가이 연구원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마모을루는 에르도안과 똑같은 브랜드"라며, "너무 큰 위협이기에 싹부터 자른 것"이라고 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3선 출마는 현행 헌법상 금지되어 있다. 이에 따라 헌법 개정 또는 조기 대선이 유일한 연장 시나리오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개헌을 위해선 의회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600석 중 272석에 불과해 야권의 협조 없이는 개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미 2017년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를 대통령제로 바꾸고 권력을 집중시킨 전례가 있는 에르도안은, 조기 대선 권한을 가진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과 정보기관을 지휘하며 입법·사법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시 개헌 조항에는 중임 대통령도 조기 대선을 실시하면 재출마가 가능하다는 단서까지 포함됐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체포가 단순한 법 집행이 아니라, 대선 정국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치밀한 포석’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오지예긴 대학교 무라트 소메르 정치학 교수는 CNN에 “이번 체포는 튀르키예가 개방적 권위주의를 넘어 완전한 독재 체제로 이행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현재 2028년 7월까지의 임기가 보장돼 있는데 임기 만료 전 조기 대선을 치를 경우 재출마가 가능해 2033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한편 에르도안의 야권 탄압에 시민사회도 반발하고 있다. 이마모을루 시장의 체포 이후 튀르키예 전역에서는 시위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수천명에 이르는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지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