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입법 권력을 한 손에 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주에 사법부가 번번이 제동을 걸면서 양측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미국 연방법원이 사실상 정부의 유일한 견제 세력으로 떠오르자 트럼프 대통령은 ‘판사 탄핵’ 카드까지 꺼내는 등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23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급진 좌파들의 불법적인 전국적 가처분 명령이 나라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존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을 향해 “당장 전국적인 가처분 명령을 중단하라”고 압박했다. 이어 “판사들은 8000만 표를 얻지 않고도 대통령의 권한을 가지려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연방법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나선 배경에는 사법부가 자신의 정책에 매번 제동을 걸고 있다는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연방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이의를 제기한 100여 건의 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약 30건은 불법 이민자 추방 등 이민 정책 관련 사건이고 20건 이상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에 대한 소송이다. 연방법원은 이 과정에서 자동 출생 시민권 제한, 불법 이민자 추방, 정부 조직 폐쇄 등을 일단 중지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연이어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더 나아가 행정부나 정부 기관을 피고로 하는 소송이 근거가 없거나 악의적일 경우 사건을 대리하는 변호사와 로펌을 제재하라는 지시까지 법무부에 내렸다. 머스크 CEO도 다음 달 1일 열리는 위스콘신주 대법관 선거에서 보수 성향의 브래드 시멀 판사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대선 경합주인 위스콘신의 대법원을 4대3 보수 우위로 재편해 주요 현안을 트럼프 정부에 유리하게 만들겠다는 포석에서다. 트럼프 대통령도 “매우 중요한 선거”라며 지지층의 투표를 독려하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이 이어지자 사법부도 강하게 저항하고 나섰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18일 이례적으로 성명을 내고 “판사 탄핵은 200년 이상 사법부 결정을 둘러싼 이견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됐다”며 “그 목적을 위해서라면 일반적인 항소 절차가 있다”고 받아쳤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앞서 지난해 전직 대통령의 재임 중 공적 행위에 대해 광범위한 형사상 면책특권을 인정하는 결정을 주도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4일 연방의회 연설에서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 인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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