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 수 없다. (때문에) 누가 돈을 버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지 알 수 없다.”
필자가 지난 2016년 1월의 기획 기사에서 우리 문화계의 ‘예술의 산업화’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인용한 한 공연예술 분야 투자사 관계자의 말이다. 아직 예술 분야에 시장이 없기 때문에 시장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또 시장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이에 따라 기본적인 시장 인프라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예술의 산업화’와 ‘산업의 예술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순수예술’ 또는 ‘기초예술’이라는 애매모호한 이름에서 벗어나 예술 창작물의 제품화와 이의 유통을 통한 수익창출의 선순환을 통한 예술 생태계가 확장돼야 한다고도 했다.
당시 이 기사로 비판도 일부 받았다. 순수한 예술을 ‘돈’이라는 자본적 관점에서 대한다는 것이다. ‘예술산업’이라는 말은 당시 예술인들 사이에는 금기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분들의 주장은 대개 이렇다. “예술만의 특성이 있다”거나 “예술은 순수성과 공공성, 독립성을 갖고 있다”, “예술마저 자본주의적으로 변질시킬 수는 없다” 등이다. 열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전반적인 문화의 기초를 다질 수 있다. 다만 그 뿐일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순수예술’ 이외에 예술에서 돈이 되는 부분은 ‘대중예술’이라고 별도로 쓰이고 있다. 그럼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은 얼마나 다를까. 연극은 순수예술이고 영화는 대중예술인가. 영화와 연극을 함께 하는 사람은 대중예술가이자 순수예술가인가. 순수예술가들의 작품 또는 상품은 가격이 매겨지지 않나. 연극인 듯 아닌 뮤지컬은? 최근 유명 영화배우들이 연극에 출연하거나 가수들이 미술을 하는 것이 ‘뉴스’가 되는데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을 넘나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미지 쇄신 차원인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가까이 지난 현재 2025년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예술산업’이나 ‘예술의 시장화’, ‘예술 생태계’ 등의 표현이 보편적으로 쓰인다. 공연시장 규모를 측정할 수 있는 ‘공연예술 통합전산망’, 미술시장을 보는 ‘한국미술시장 정보시스템’ 등도 가동되고 있다. 시장을 알게 되면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달 초 내놓은 중장기 문화비전 ‘문화한국 2035’에도 ‘예술 산업 생태계 지원’을 목표로 한다는 표현이 적시되어 있다. 문화비전에서 “예술 분야는 보조금 지원 위주의 사업들로 예술계의 정부의존성이 심화되고 예술 단체 및 기관의 장기적 역량 강화에 한계”를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책 금융기법, 민간의 재원 등을 활용해 예술시장을 만들고 예술 현장의 자생력 강화도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돈’을 많이 벌 수 없는 예술이라고 해서 당연히 무시 당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영원히 돈이 안되기 때문에 국가나 사회의 지원을 계속 받아야 한다는 말도 어페가 있다.
이런 추세는 정부 여당과 야당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이 높은 문화의 힘.’ 백범 김구 선생이 가지신 꿈이었습니다. 그 꿈 문화강국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 (중략) 문화가 곧 경제이고, 문화가 미래 먹거리입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최근 출간한 공동저서 ‘잘사니즘-포용적 혁신 성장’에서도 이를 반복했다.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립국악원장 선임 논란을 보면서 다소 당황했다. ‘정통 국악인이 아닌’ 문체부 공무원이 국립국악원장으로 처음 내정됐다는 국악인들의 반발이다. 공모 과정에서 사전 내정이 가능하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국악원장의 역할을 어떤 종류의 사람이 맡느냐는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다.
아쉽게도 예술의 산업화와 가장 멀리 있는 예술 분야는 국악인 듯하다. 국악은 이른바 ‘순수예술’의 핵심이기도 하다. 문체부의 ‘2024년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악 공연 매출(티켓판매액)은 달랑 49억 원에 불과했다. 전년 대비 겨우 3.3% 늘어났다. 작년에 국내 전체 공연시장이 1조 4538억 원으로 전년 대비 14.5%나 증가한 데 비하면 극히 미미하다.
이와 관련, 2023년 기준 국립국악원(국립민속국악원, 국립남도국악원, 국립부산국악원 포함) 직원·단원은 모두 860명, 총 지출은 1067억 원이었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30년간 국립국악원 원장 자리는 서울대 국악과 출신들이 독차지해왔다고 한다. 한국문화(K컬처)가 글로벌 인기를 키워가던 시기다. 국악의 성장은 그렇지 못해서 아쉽다.
참고로 지난해 공연 매출을 보면 같은 순수예술로 분류되는 무용(한국·서양) 분야는 206억 원, 연극은 734억 원, 클래식(서양음악)은 1010억 원이었다. 뮤지컬은 4651억 원이었다. 국악의 저조한 성과는 중국의 경극이나 일본의 가부키 등 이웃 나라에서 전통예술이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과도 크게 차이 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