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로 국회 문턱을 통과한 국민연금 개혁이 공포 전부터 거센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여권 차기 주자들 사이에서 ‘연금 개악’이라는 혹평은 물론 정부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힘들게 첫 단추를 끼운 합의의 가치를 외면한 채 다음 논의를 통한 진전 가능성마저도 발목 잡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번 연금 개혁 과정은 ‘18년’이라는 시간에서 보듯 여러 번의 좌초 위기를 극복하면서 만들어졌다. ‘받는 돈’인 소득대체율에 대해 여야가 불과 1~2%포인트 차이를 놓고 기 싸움을 벌였고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를 두고도 지난한 공방을 이어갔다. 협상 막판에는 ‘합의 처리’라는 문구 하나를 두고 양측의 의견이 맞붙으면서 불과 네 글자 때문에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여야 지도부는 한발씩 물러나면서 논의의 물꼬를 터나갔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국민연금법의 소관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중재안을 내놓으며 진전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여야정의 양보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물이 이번 연금 개혁이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우 의장은 “이번 합의는 경직됐던 연금 개혁 논의를 보다 유연하게 지속적으로 추진해가자는 방향성의 제시였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어렵게 만든 합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여권 잠룡들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는 “‘어렵게 합의한 것’이라는 말이 청년 착취, 청년 독박을 정당화할 수 없다”며 “거부권은 이럴 때 쓰는 것”이라고도 말했다.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도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을 해야 할 무거운 책임은 정부와 국회 모두에 있다”면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게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당초 모수 개혁 합의 소식에 ‘만시지탄’이라고 입장을 밝혔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여권 잠룡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부랴부랴 “‘연금 개악법’ 거부권 행사 후 자동조정장치 도입 등 다시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이번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의원 연대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미래 세대 부담’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겨냥한 청년 표심 잡기라는 해석까지 내놓는다.
하지만 정작 국회 내 미래 세대라고 불리는 3040세대 의원들은 ‘다음’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비록 모수 개혁안에는 ‘반대’ 투표를 했지만 이를 뒤집기보다는 국회 연금 개혁 특위에서 진행될 구조 개혁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 무게를 실은 것이다.
여야 30·40대 의원들이 주축이 된 ‘더 나은 연금개혁을 요구하는 국회의원 모임’은 23일 기자회견을 열어 “연금 개혁 논의는 앞으로 책임을 짊어질 세대가 앞장서야 더 많은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다”면서 “청소년과 청년들의 목소리가 무시되지 않도록 저희가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고 강조했다.
연금 개혁 논의를 주도한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이들의 의견을 반영해 특위에 청년 의원들의 참여를 늘릴 것을 우 의장에게 건의할 방침이다. 특히 여당은 연금특위 위원장에 윤영석 의원, 특위 절반을 30대 의원(김용태·김재섭·우재준)으로 구성했다. 야당도 30대 1명(모경종), 40대 2명(강선우·김남희)으로 짰다.
김상일 정치평론가는 “국민연금과 같이 이해관계가 복잡한 사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합의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다음 단계에서 보완하는 방안을 고민해야지 합의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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