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AI 패권을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서로를 겨냥한 기술 규제에 나섰다.
25일(현지 시간) CNBC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날 50개 이상 중국 기술 업체들을 대거 수출통제 목록,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추가했다. 조 바이든 전임 행정부가 도입한 중국 기술기업에 대한 블랙리스트는 미국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다. 이번에 수출통제 목록에 오른 기업에는 대만의 서버 업체인 인스퍼의 자회사, 중국의 비영리 AI 연구기관인 베이징인공지능아카데미(BAAI) 등이 대거 포함됐다. 미국 기업이 블랙리스트에 등재된 중국 기업과 거래를 하려면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무부는 이번 조치가 미국 기술이 중국 군용 슈퍼컴퓨터 개발에 전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중국의 기술 추격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CNBC는 “(상무부 조치는) 미국이 중국의 AI와 반도체 역량 억제에 나선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가 자국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를 건설할 때 에너지효율이 높은 칩을 쓰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했다고 보도했다. FT는 “현재 엔비디아의 AI 전용 칩인 H20이 강화된 규정을 충족하지 못한다”며 중국 정부가 사실상 엔비디아를 타깃으로 규제에 나섰다고 짚었다. 중국 규제 당국이 최근 수개월 동안 자국 테크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지 못하도록 암암리에 막아왔다는 분위기도 전해졌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 연간 매출 171억 달러(약 25조 원)의 13%를 차지하는 중국 판매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미중 간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국 정부가 규제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민간기업들도 ‘신경전’에 가세했다. 중국 AI 스타트업인 0.1AI의 리카이푸 설립자는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AI 기술 측면에서 미국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글차이나 대표 출신인 리카이푸는 AI 분야 거물로 꼽힌다. 그는 “이전에는 (미중 사이에) 최대 9개월까지 기술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핵심 기술 가운데 일부는 3개월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며 “일부 기술은 중국이 오히려 앞섰다”고 주장했다. 리카이푸는 딥시크와 같은 중국 AI 기업들이 반도체 사용과 알고리즘을 효율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전날에는 알리바바그룹 이사회의 차이충신 의장이 “미국에서 (AI에 쓰일) 데이터센터 건설이 수요를 한참 앞서고 있다”며 미국의 AI 산업 확대를 견제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아 주목을 끌었다. 그는 “미국에서 나오는 AI 투자 관련 수치에 대해 경악하고 있다”면서 미국 데이터센터 ‘거품론’까지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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