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포드 챔피언십에 모처럼 출전하는 노장 크리스티 커(미국)는 박세리와 1977년생 동갑내기다. 요즘 출전이 뜸하지만 그래도 가끔 모습을 드러내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한다. 국내 골프팬들에게는 10년 전 그가 한국 여자골퍼들의 스윙에 대한 묘한 평가 때문에 더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커는 세계 여자골프 무대를 지배하기 시작한 한국 여자 골퍼들을 거론하며 “그들은 기계들이다. 하루 10시간씩 연습한다(They’re machines. They practice 10 hours a day)”고 말한 적이 있다. 그가 왜 그런 얘기를 꺼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재능이 뛰어나다(They’re so talented)”는 말을 전제로 단 걸 보면 비꼰 것이라기보다는 너무 열심히 노력한다거나 아니면 부러워한 것으로 느껴진다. 그의 말대로 한국여자골퍼들은 재능이 뛰어나고, 열심히 할 뿐 아니라 ‘머신(기계) 같은’ 스윙을 갖고 있다.
이번 주 포드 챔피언십에 출전하는 커는 아마도 한국 뿐 아니라 다른 국가 젊은 선수들의 기계적인 스윙을 보면서 또 한 번 놀랄 듯하다. 이제는 한국 선수 뿐 아니라 미국이나 일본 선수들도 모두 ‘스윙 머신’ 같은 비슷비슷한 샷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10년 전만해도 미국이나 일본 선수 중에서는 한국의 주말골퍼에게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별난 스윙을 하는 선수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개성적인 스윙을 하는 선수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 선수들을 보면서 체계적인 스윙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외국 선수 사이에 ‘한국 선수 따라 하기’ 열풍이 분 때문이다. 한국 여자골퍼에 영향을 받으면서 스윙이 상향평준화 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교과서적’이면서도 저마다 무척 개성적인 스윙을 갖고 있다. LPGA 투어에서 스윙에 관한한 최고 관심을 끈 두 주인공이 있다면 박인비와 박성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박인비의 스윙은 ‘가성비’란 면에서는 세계 최고라고 할 만하다. ‘골프 전설’ 중 한 명인 리 트레비노는 “골프는 어떻게 아름다운 스윙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같은 스윙을 실수 없이 되풀이할 수 있느냐의 게임”이라는 말을 남겼다. 박인비의 스윙은 트레비노의 명언에 무척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언젠가 애덤 스콧(호주)은 “샷이 안 될 때 박인비의 스윙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리듬을 찾는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성현은 미국 언론이 가장 경이롭게 생각한 스윙의 주인공이었다. 임팩트를 전후로 허리가 90도로 꺾이는 그의 스윙은 누가 봐도 놀랄 만했다. LPGA 투어에서 26승을 거둔 주디 랭킨(미국)은 당시 “투어에서 가장 용감하게 드라이버샷을 구사하는 선수가 박성현이다. 렉시 톰프슨 정도가 비교 대상이 될 수 있고, 다른 선수들과는 큰 차이가 난다”고 말하기도 했다.
8년 전 미국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SI)가 LPGA 투어 선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설문에서 LPGA 투어 선수들이 선택한 ‘최고의 스윙을 가진 선수’는 다름 아닌 최나연이었다. 그리고 최나연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선수는 김효주였다.
어디 그 뿐인가. 고진영의 군더더기 없고 깔끔한 스윙은 똑바로 보내는 능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세영은 공에 힘을 제대로 실어줄 수 있는 효율적인 스윙을 하고 전인지의 스윙은 리듬감이 누구보다 뛰어나다. 전인지의 스윙에 대해 사랑한다고 표현한 모건 프레셀(미국)은 리듬이 너무 좋고 그의 리듬은 압박감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높게 평가했다.
한국 여자골퍼들의 스윙은 ‘기계적’이라고 하기 보다는 ‘체계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제 조만간 세계 언론은 또 한 명의 스윙에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다. 아직은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곧 진가를 드러낼 윤이나의 스윙이다. 그의 파워 넘치고 정교한 스윙은 세계를 매료시킬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내년에는 ‘파워 스윙의 대명사’ 황유민과 방신실도 LPGA 진출을 타진할 것이다.
세계의 모범이 된 대한민국 여자골퍼의 스윙을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근접한 위치에서 접한 주인공이 있다. 2003년부터 22년 간 KLPGA 투어 공식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준석 사진작가다. 강남구 캐논 갤러리에서 내달 6일까지 ‘박준석 사진전’을 열고 있는데, 무려 1100여 개의 골프 대회에서 약 792만 번의 스윙을 담았다고 한다. 전시의 주제도 ‘792만 번의 스윙, 792만 번의 기록, 1/792만 초의 셔터’다. 대한민국 여자골퍼 중 그의 셔터를 피해간 선수는 없을 것이다.
이제 2개월 후면 골프기자 생활을 한지 30년을 꽉 채우는 기자는 그동안 박 작가의 사진을 가장 많이 썼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를 통해 박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마 KLPGA 투어를 거쳐 갔거나 지금 현역으로 뛰고 있는 여자 골퍼들도 기자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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