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6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차기 대선 주자 부동의 1위인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면서 조기 대선 국면에서 독주 체제를 굳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됐다. 이날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선고일을 지정하지 않아 사실상 4월 선고가 유력한 가운데 정치권은 헌재의 판단에 촉각을 곤두세울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6-2부는 이날 이 대표의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1심을 뒤집고 이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 판결이 나온 지 131일 만으로 재판부는 이 대표가 고(故)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한 것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용도 지역 상향 변경이 국토교통부 압박에 따라 이뤄졌다고 발언한 것 모두 허위 사실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번 무죄로 이 대표는 정치생명 위기에서 기사회생하게 됐다. 윤 대통령 탄핵 선고가 다음 달에 이뤄지더라도 조기 대선이 가시화되기 전까지 수권 정당, 후보로서 위상을 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표는 선고 직후 “진실·정의에 기반해 판결한 재판부에 감사하다”며 “사필귀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에게 걸림돌이 사라진 만큼 윤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 압박의 강도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쌍탄핵’도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
여당은 즉각 반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법조인 출신인 입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며 “판사 개인의 성향이 직업적 양심을 누르고 판결에 반영됐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검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항소심 법원의 판단은 피고인(이 대표) 발언에 대한 일반 선거인들의 생각과 너무나도 괴리된 경험칙과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판단”이라며 “상고해 대법원에서 항소심의 위법을 시정할 수 있도록 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현재 5개 재판을 동시에 받고 있는 이 대표가 안심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큰 고비를 넘겼지만) 계류 중인 재판이 많다”며 “특히 대선 이후 헌법 84조 적용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공권력 낭비 말라" 검찰 직격한 李…정국 주도권 '굳히기' 돌입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위증교사 혐의에 이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도 무죄를 이끌어내면서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다지게 됐다. 당내 경쟁자는 사실상 전무한 데다 상대 후보들과의 경쟁에서도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3년 넘게 자신의 발목을 잡아온 ‘사법 리스크’의 족쇄마저도 벗으면서 조기 대선이 열릴 경우 대권 가도에 파란불이 켜졌다는 평가다.
민주당은 26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항소심 무죄 소식에 ‘당연한 결과’라고 환영했다. 조승래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를 옭아맸던 거짓 올가미가 마침내 끊어졌다. 진실은 드러났고 정의는 승리했다”며 “검찰의 정치 보복 수사에 경종을 울리는 사필귀정의 판결을 내려준 법원에 감사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에도 신속한 선고기일 지정을 촉구한다”며 “내란 종식과 국정 회복을 위해 더욱 힘차게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최종 판단 남았지만 대권영향 無
당내 경쟁자 없고 與잠룡도 압도
당내 경쟁자 없고 與잠룡도 압도
이 대표는 자신을 기소한 검찰을 직격했다. 그는 2심 선고 직후 “검찰과 이 정권이 이재명을 잡기 위해 증거를 조작하느라 썼던 역량을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썼다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됐겠느냐”며 “검찰은 자신의 행위를 되돌아보고 더 이상 이런 공권력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검찰이 유죄다. 이제 정치검찰이 쏜 탄환을 정치검찰 심판의 과녁으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조기 대선 체제에 돌입한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 촉구 압박 수위를 더욱 높일 방침이다. 지금의 기세를 몰아 여당보다 빠르게 대선 채비를 마치면서 주도권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이 당내에서 도전장을 내밀겠지만 대세에는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들의 사실상 유일한 공세 카드였던 사법 리스크마저도 해결되면서 당내 일각에서는 후보 추대를 언급하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이 대표로서는 ‘좌우클릭’을 넘나드는 정책 행보에 더욱 무게를 실으면서 국정운영 능력을 보여주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지지율 격차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중도 지지층 확장만 실수 없이 이어가면 된다는 전략이다. 이 대표는 2심 선고 직후 곧장 자신의 고향인 경북 안동 산불 현장을 찾아 대피소를 둘러본 뒤 “이재민들이 최대한 신속하게 터전으로 돌아가도록 주거 지원 등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된다면 본선 구도는 더욱 이 대표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통령 보궐선거의 귀책사유를 제공한 책임을 질 수 있는 국민의힘보다 앞선 위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기관 한국갤럽의 3월 3주 차(18~20일, 전국 성인 1003명) 정례 조사에서 이 대표의 차기 지도자 선호도는 36%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9%),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4%), 오세훈 서울시장(4%), 홍준표 대구시장(3%) 등 여권 잠룡을 압도하기도 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 13.1%. 중앙여심위 참조).
선고 후 고향 안동 산불현장 찾아
완전 무죄에 국힘 "대단히 유감"
완전 무죄에 국힘 "대단히 유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희망을 걸었던 국민의힘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조기 대선은 준비 기간이 짧아 후발 주자들이 추격을 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국 단위 선거인 대선은 판을 뒤집을 ‘묘수’를 찾기가 더 어렵다. 사실상 윤 대통령 탄핵 기각에 당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수영 시사평론가는 “여당으로서도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검찰이 상고를 결정하면서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대권에 영향을 주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대법원이 2심 판단을 뒤집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파기환송심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당으로서는 대장동·백현동 개발 및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 등 이 대표의 나머지 사법 리스크를 고리로 공세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이들 혐의 모두 재판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헌법 84조’ 논쟁에 불을 붙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대법원에서 6·3·3 원칙에 따라 신속히 재판해 정의가 바로잡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동욱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이 대표가 ‘전과 4범’이라는 사실과 ‘8개 사건, 12개 혐의, 5개 재판’이라는 꼬리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며 “이 대표가 진정으로 떳떳하다면 남은 재판들에서는 ‘꼼수 전략’을 펼치지 말고 성실히 재판에 임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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