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화마가 경북 지역을 집어삼킨 지 엿새째가 됐지만 강풍과 건조한 날씨에 진화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과거 봄철에 소규모로 자주 일어나던 산불이 갈수록 연중화·대형화 추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산불로 인명 피해까지 크게 늘자 전문가들은 종합적인 산불 대응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것은 대응 매뉴얼이다. 산불은 초동 대응이 가장 중요하지만 현행 체계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재 산림청이 가지고 있는 산불 대응 지휘권을 소방청 혹은 상위 기관인 행정안전부로 이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소방학회장을 지낸 최돈묵 가천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대형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컨트롤타워를 일원화시켜야 빠른 대응이 가능하다. 산불 대응 1단계까지는 산림청에서 해도 무방하지만 2단계가 넘어가는 순간 어려워진다”며 “아예 행안부 장관으로 대응 주체를 올리게 된다면 여타 부서들을 총동원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달 22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로 사망한 진화 대원 3명이 모두 60대로 밝혀지는 등 진화 대원의 고령화 문제도 도마에 올랐다. 산림청의 산불예방전문진화대는 9604명이지만 대부분이 일자리 마련 차원에서 고용된 고령층이기 때문에 산불 감시가 아닌 진화 작업에는 사실상 투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산림청은 산불재난특수진화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435명뿐이라 이번 사태처럼 대형 화재가 동시다발로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경북 의성군의 대형 산불 발생 가능성을 경고했던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체력이나 판단 능력 측면에서 젊은 인력이 유리한 만큼 현재보다 처우를 대폭 개선해 평균연령을 낮추고 조직적인 진화대를 구성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달 26일 의성 산불 현장에서 추락한 산불 진화 헬기가 생산된 지 30년 가까이 된 담수 용량 1200ℓ의 S-76 기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장비 노후화 문제도 대두됐다. 실제 산림청의 진화 헬기 중 기령이 20년을 넘은 헬기는 70%에 육박한다. 산불 초동 대응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산불 감시 카메라 또한 별다른 확충 없이 10년간 운용해왔다.
이 같은 문제점 개선을 위해 전문가들은 산불 조심 기간에만 대응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대신 최신 기술을 도입해 연중 상시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 회장은 “현행 예방 체계에 큰 허점이 드러난 만큼 드론이나 인공지능(AI) 등 무인 기술을 활용해 한계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재난·환경연구부장은 “산불 관리 시스템도 기후변화 시대에 맞게 365일 상시 대응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무작정적인 기술 도입은 지양하고 단계적인 적용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최 교수는 “산불 진화 대원들의 나이가 많은 만큼 AI 기능이 탑재된 CCTV나 드론 등 신기술의 도움을 받아 과학적인 감시 활동 체계로의 전환은 분명 필요하다”며 “다만 유행처럼 기술 도입을 하다 보니 덩치만 커지고 정작 현장에 적용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거처럼 소규모 과제를 위주로 즉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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