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이례적 행보가 김선호 국방부 차관이 장관 직무대행 기간 중 K방산 성과를 올리기 위한 충정인지, 개인 성과물을 만들려는 사욕인지 의견이 분분합니다.”
국방장관 직무대행을 맡은 이후 강한 리더십과 거치 없는 행보로 무너진 군 기강을 다잡아가며 새로운 면면을 보여 군 안팎의 신뢰가 높아지고 있는 김 장관 직무대행에 대해 최근 만난 군 관계자가 건네 얘기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면직·구속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빈 자리를 4개월 여 대리한 김선호 차관이 최근 이례적인 1급 인사(자원관리실장)를 실시한 데 이어 논란이 지속되며 전력화가 1년 가까이 지연되고 있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방식에 대해 관련 부서에 조속한 결론 도출을 사실상 지시(?)해 그 배경에 대해 군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당장 지난 3월 17일 국방부 자원관리실장에 현직인 조현기 방위사업청 기반전력사업본부장(1급)을 임명했다. 주목할 점은 통상적인 공모 절차를 거친 것이 아닌 고위공무원단의 전보를 통한 이례적 인사다. 근거는 ‘고위공무원단 인사규정’ 제5조(임용권의 위임) 1항 4조에 따른 소속 장관을 달리하는 기관 간의 전보로, 김 장관 직무대행이 조 본부장을 콕 찍어서 강력하게 요청해 사실상 스카우트 형태로 국방부로 데려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고위공무원의 부처간 전보 인사는 흔하지는 않지만 부처 간 협의가 이뤄지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국방부와 방사청 간에 충분한 대화를 통해 이뤄진 인사라며 다만 방사청 기반전력사업부장(1급) 자리 후임은 정해지지 않아 공석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자원관리실장은 군수정책 및 군사시설 정책 수립·관리, 군 공항 이전사업 등 우리 군의 자원관리 관련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직위다.
군수정책 총괄 1급 직위에 ‘전력통’ 임명
재미있는 점은 조 신임 실장은 육사 46기로 임관해 방사청에서 국방기술보호국 기술정책과장, 기반전력사업본부 기동사업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방위사업청 개청 전인 육군 전력개발관리단 근무 때부터 20여 년 간 무기체계 획득과 방위산업 수출 등을 담당해온 전력 분야 전문가로 공학박사 학위도 갖고 있다. 직전 성일 전 자원관리실장처럼 군수 분야 전문가도 아니고 이쪽 분야에서 일해 본 경험도 없다.
국방부는 임명 배경에 대해 “뛰어난 리더십과 조직관리 능력으로 방사청 기반전력사업본부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자원관리 정책 추진에 있어 각 군 및 방사청 등 유관기관과의 원활한 협조체계를 유지·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설명했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가 밝힌 각 군 및 방사청 등 유관기관과의 원활한 협조체계 유지·발전시킬 최적임자라는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조 신임 실장의 방사청 내 위상은 전력 획득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당장 폴란드와의 9조 원(60억 달러) 규모의 K2 전차 2차 계약 협상을 비롯해 앞서 K9 자주포와 FA-50 수출 등 K방산의 해외 수출 사업을 주도할 정도로 해외에서 가장 신임하는 방사청 고위직으로 전해졌다.
이에 김 장관 직무대행이 이례적 인사이자, 방사청 입장에서 전력 분야 실력자를 빼 가는 상황임에도 조 신임 실장을 데려다 국방부가 주도해 K방산의 역대급 성적표를 올리기 위한 ‘충정’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올해 K방산 수출 목표치는 200억 달러로, 2022년 173억 달러를 기록한 K방산 수출 규모는 이후 2023년 135억 달러, 지난해 95억 달러에 머물렀다. 당초 목표치(200억 달러)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한화오션 ‘공동개발’ 상생방안으로 부각
이 상황까지는 김 장관 직무대행의 K방산 미래를 위한 충정이라며 높은 점수를 줬지만, KDDX 사업 방식을 두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 간 과열 경쟁이 최근 격해지는 상황에서 관련 부서에 K방산 조선 분야의 발전을 위한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해 조속히 결론을 내라는 이례적 의중을 드러내 군 안팎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HD현대중공업은 KDDX 기본설계를 담당한 자사와 관행대로 수의계약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한화오션은 군사기밀 관련 사고를 일으킨 HD현대중공업의 전력을 고려해 수의계약이 아닌 공동개발 또는 경쟁입찰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갈등으로 방사청은 지난 3월 17일 사업분과위원회를 열었지만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업체 선정 방식에 대한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지난 27일엔 2차 분과위를 열어 KDDX 안건을 논의하려고 했지만 이마저도 개최 직전에 취소해 다음달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는 KDDX 사업이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도 두 업체 간 갈등에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는데, 김 장관 직무대행이 상생협렵 방안 마련 의중을 드러내 다다음달, 즉 5월 내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업체를 선정을 밀어붙이려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충정이 아닌 ‘사욕’이 담긴 것이 아니냐며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두 업체가 모두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에 참여하고 나머지 5척도 두 업체가 적절한 비율로 나눠 가지는 상생협력 방안이 대안으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상의 공동개발 방식으로, 한화오션 입장이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다.
방사청 개청 후 18번의 함정 연구·개발에서 ‘기본설계업체가 상세설계 및 선도함을 건조한다’는 원칙이 불문율로 자리 잡고 있다. 국내 구축함 건조에서 공동개발은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김 장관 직무대행, 이례적 의중 드러내
게다가 조 신임 실장은 방사청에서 기반전력사업본부 기동사업부장, 기반전력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하며 두 업체 간 갈등에 계속 관여해 누구 보다 내용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 의구심의 눈초리에 불을 지피고 있다. 특히 김 장관 직무대행이 이례적 의중을 드러낸 이후 방사청은 2차 분과위를 밤늦게 전격 취소하고, 다음날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HD현대중공업도 한발 물러서는 분위기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자사가 수의계약으로 주계약자가 되고, 한화오션은 협력업체로 상세설계 일부 영역에 참여하는 방안을 각각 상생협력안은 검토해 보겠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물론 한화오션은 두 업체가 방사청과 공동계약 후 공동으로 상세설계를 수행하고 2척의 선도함(1·2번함)을 분할 건조하는 방안을 강조하고 있다.
군 소식통은 “비상계엄으로 군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크게 떨어지는 상황에서 공군의 오폭 사고와 육군의 무인기 충돌 사고까지 겹쳐 군 기강 해이 문제가 부각돼 리더십에 흠집이 생기면서 김 장관 직무대행 요즘 고민이 많다”며 “그나마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유럽과의 수출계약 협상 진행이 잘되고 있고 도널드 드럼프 대통령이 한국 조선업을 띄우고 미 해군의 MRO 사업도 성과가 나기 시작해 실추된 장관 직무대행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한 차원으로 K방산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방산업계는 기존 관례인 수의계약 방식을 깨고 공동개발 방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에 우려하는 모습이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국방부가 방사청에게 적극적인 중재를 통해 상생방안을 마련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안다”며 “방사청도 이런 지적을 의식해 중재안 마련을 위해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측과 접촉하고 있는데 자칫 국방부가 업체 간 자율경쟁에 개입해 공정거래법 훼손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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