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고율 관세를 비롯한 여러 정책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미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블룸버그통신은 올 1분기 블룸버그 달러지수가 올해 약 3% 하락해 지난 2017년 이후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미 달러화가 31개 주요 통화 대비 일부를 제외하고 약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주요 10개국(G10) 중 스웨덴 크로나 가치가 달러 대비 10.7% 올랐고 노르웨이 크로네도 8.5% 올랐다. 일본 엔화와 유로화도 각각 달러 대비 4.9%, 4.6% 상승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향후 달러 약세가 더 이어질 것으로 점치는 시각이 적지 않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내년 1분기까지 엔화는 달러 대비 4.05% 오를 것으로 예상되며 유로화는 1.63% 상승이 전망된다.
최근 미 증시 하락에도 달러 가치가 빠지고 있어 투자자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 과거 미 증시가 빠질 때 달러화 가치는 오르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둘 다 약세를 보이고 있다. 그 대신 시중 자금은 금, 유럽 주식 등으로 향하는 양상이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으로 미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서비스업체 페퍼스톤의 마이클 브라운 선임전략가는 “외환시장에서 안정성의 보루이자 최우선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달러화가 이제 완전히 반대 위치에 있다”면서 달러 대체 투자처에 대한 고객들의 문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라보뱅크의 제인 폴리 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정책, 동맹 역할 축소 등에 따라 “탈달러 흐름이 빨라지고 달러 가치가 약해질 것”이라고 봤다.
물론 최근의 현상만을 두고 달러화의 지위 자체가 바뀐다고 진단하기는 건 무리라는 평가도 많다. 달러는 여전히 외환보유고의 주요 통화이고, 주요 원자재 결제에 쓰인다. 하버드대학 교수인 카르멘 라인하트는 “달러가 하루 사이에 준비통화로서 영국 파운드를 추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정책들로 많은 국가들이 달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려는 노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맥쿼리그룹의 거시경제 전략가 티에리 위즈먼은 “사람들이 미국의 지정학적, 경제적 기본 질서에 의심을 품기 시작하면 미국 주식 시장과 달러 모두를 하락시키는 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약달러 현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지지만 ‘탈달러’ 움직임에 대해서는 강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비(非)서방 신흥경제국 연합체 브릭스(BRICS)를 겨냥해 “달러 대체 시도를 포기하도록 확약받을 것”이라면서 이를 거부할 경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