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 선거에서 극우 ‘돌풍’을 일으키며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꼽혔던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이 공적자금 유용 혐의로 1심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2027년 예정된 대선에 출마할 수 없게 된다.
31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파리 형사법원은 이날 르펜의 유럽연합(EU) 예산 유용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집행유예 2년을 포함한 징역 4년, 벌금 10만 유로(약 1억 6000만 원), 5년간 피선거권 박탈을 선고했다. 법원은 특히 검찰의 요청을 받아들여 르펜의 5년간 피선거권 박탈 효력을 즉시 발효했다. 최종심에서 형이 확정되기 전이라도 이날 1심 판결만으로도 효력은 유지된다는 의미다.
르펜과 RN 당직자 등 20여 명은 2004∼2016년 유럽의회 활동을 위해 보좌진을 채용한 것처럼 허위 서류를 꾸며 보조금을 받아낸 뒤 실제로는 당에서 일한 보좌진 급여 지급 등에 쓴 혐의(공금 횡령·사기 공모)로 기소됐다. 법원은 르펜을 포함한 RN 당직자들이 11년 이상 총 290만 유로(약 46억원)의 유럽의회 자금을 유용했다며 “실제로는 극우 정당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의 비용을 유럽의회가 부담했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이들의 범행으로 발생한 추가 피해 금액까지 하면 유럽의회의 손실은 410만 유로(약 71억원)에 달한다고 법원은 설명했다.
이날 선고 결과에 따라 차기 대권을 노려온 르펜과 RN은 최악의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르펜은 극우 정치인으로는 처음으로 2017년과 2022년 프랑스 대선 결선에 두 번 연속 진출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을 위협했다. 2017년 결선 투표에서 33.9%를, 2022년엔 41.46%를 득표하는 등 지지세가 확산해 차기 대선에서는 실제 르펜 의원이 대권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RN 자체도 지난해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내 1위를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으며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으로 치러진 조기 총선 결과 단일 정당으로는 최대 의석수인 123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RN의 중심추인 르펜 의원의 유죄 선고뿐 아니라 RN의 조직적 범행이라는 점이 판결로 인정된 만큼 향후 당 운영이나 외연 확장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르펜 의원을 이어 RN을 이끌어 온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오늘 부당하게 처벌받은 건 마린 르펜뿐만이 아니라 프랑스 민주주의 자체”라며 선고 결과를 비판했다.
유럽의 대표적 극우 정치인인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도 엑스에 “내가 마린이다”라는 메시지를 올리며 지지를 보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이날 선고 결과와 관련해 정례 브리핑에서 “점점 더 많은 유럽 수도가 민주주의 규범을 위반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다만 이번 판결은 “프랑스 내부의 문제”라고 추가 언급은 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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