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1980년대 대한민국은 역사상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이렇게 성공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양질의 노동력을 꾸준히 배출했던 교육이 있다. 당시 우리는 선진국에 비해 임금이 낮으면서도 수준은 낮지 않았던 노동력을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 대량 투입해 비용을 크게 낮췄고 가격경쟁력을 바탕으로 1960~1970년대 경공업에서 1970~1980년대 중화학공업에 이르기까지 수출을 증대시키고 산업을 발전시켰다. 우리의 주입식 교육은 소품종 대량생산에 일사불란하게 투입될 수 있는 양질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길러냈고 국민 모두 이런 교육의 수혜자였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어 주입식 교육의 효과는 과거만 못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가격보다는 다양성이 더 높은 호응을 받게 됐고 우리 사회에서도 획일성은 더 이상 중요한 장점으로 대접받지 못하게 됐다.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를 대신하게 됐고 이에 따라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이, 종합성보다는 전문성이 경쟁력의 핵심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술 진보로 인해 어느 때보다도 독창적 인재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교육이 해야 할 핵심 역할도 더 이상 지식 주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다양한 체험을 통해 본인의 적성을 최대한 발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회의 변화와 요구에 민감한 사립대학들은 이미 지속적으로 변신을 시도해왔고 서울대가 첨단융합학부와 학부대학을 출범시키는 등 국공립대들의 변신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이와 달리 우리 초중고 교육 현장은 아직도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의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구태를 벗지 못한 대학 입시에서 찾을 수 있다. 1981년 본고사 폐지 이후 45년이 된 현시점에도 대학 입시는 사지선다형으로 모든 과목의 시험을 치르는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시험에 주입식 교육이 유리하다는 점은 1980년대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으니 초중고 교육과 교원 양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리 없다. 다양한 평가를 위해 수시를 도입했지만 실상은 수시에서도 전 과목 내신이 당락을 가른다. 상위권 대학일수록 적성을 살리는 교과 외 활동, 특히 교외 활동은 평가에서 배제하도록 규제받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만 열심히 하다가는 낙방하기 십상이다. 정시는 더하다. 탐구 과목을 두 개 선택하던 것에서 2028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부터는 10개 정도의 탐구 과목을 모두 포함하는 통합 탐구로 바뀐다. 과목별 표준점수 차이를 해소하기 위함이라지만 정작 학생들은 이제 모든 탐구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 개인의 적성을 살리는 다양성과 전문성은 뒷전으로 밀리고 두루두루 조금씩 잘하는 것이 최고인 현실이 됐다. 게다가 과목 수가 많아지니 이미 29조 원에 달한 사교육비도 계속 오를 것이 뻔하다. 올림픽 국가대표를 주 종목이 아니라 10개 종목 평균으로 선발하겠다는 꼴이다.
입시도 학생들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키우도록 유도하는 교육의 연장선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입시는 누가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 정하는 역할에만 그치고 있고 우리 아이들은 주입식 반복 학습 교육에 갇혀 있다. 미래를 위해 도전적이고 독창적인 선택을 생각해볼 시간적·정신적 여유도 없이 반복 학습에 짓눌려 10대를 허비한 학생들은 대학에 와서도 적응에 애를 먹는다. 모든 것을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대학 생활이 낯설기만 하고 스스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수업에 적잖이 당황해 방향을 잃기도 한다. 자율성을 갖고 적성을 살리는 대신 반복 학습에 10대를 헌납한 학생들은 자신만의 꿈을 개척하기보다는 세태에 부응하는 손쉬운 선택에 의존하는 경향도 보여준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이공계 전공자에게 더 많은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최상위 학생들은 관행적으로 의대·치대와 로스쿨에 몰리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의 초일류 인재들과 경쟁하며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우리 청소년들을 이런 식으로 교육시키면서 누가 이들을 탓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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